필자가 군 생활하던 시절에는 하사와 선임병들 간에 갈등이 많았다. 6개월간의 하사관(부사관) 교육을 받고 부대에 배치된 신입 하사들은 군의 기초 조직인 분대를 지휘하는 분대장이 됐다. 그런데 현역의 복무 기간이 30개월이던 시절, 오래전에 입대한 선임병들은 6개월짜리 하사의 지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1년이 지나야 상병으로 진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대 경력으로 치면, 신입 하사가 일병에게도 ‘짬밥’에서 밀린 셈이다.

한때 일병 혹은 상병 중에서 선발해 2개월간의 분대장 교육을 받게 하고 분대장으로 배치하는 제도가 있었다. 교육을 마친 이들은 하사 계급을 달고 다시 부대로 돌아가 분대장이 됐다. 이들을 ‘단풍 하사’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들이 분대장으로 배치되면 통솔해야 할 분대원 중에는 선임들이 꽤 있었다. 역시 ‘짬밥’에서 밀리는 사람이 상급자가 됐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짬밥은 먹고 남아서 버리는 밥인 ‘잔반’을 이른다. 짬밥이 많다는 것은 군 생활을 먼저 시작했다는 의미다. 예전의 일이지만, 지휘체계가 생명인 군대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군 지휘부는 형식적인 제지에 그쳤다. 부대원을 통솔하는 데 선임병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군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일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철원 출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강릉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격돌했다. 김 의원은 한 의원을 향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예의가 없다”라고 하자 한 의원은 “나보고 예의가 없다고 하는데, 내가 군단장일 때 김 의원은 연대장 하지 않았느냐, 그게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육사 31기로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고, 김 의원은 육사 40기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짬밥은 한 의원이 높고, 계급은 김 의원이 높은 셈이다. 그렇다고 짬밥이냐, 계급이냐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군 시절을 떠올렸을 뿐이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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