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화 세경대 교수
▲ 윤병화 세경대 교수

영월 칡줄다리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줄다리기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줄다리기는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고 승부의 결과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행사다. 줄을 당기는 날은 연령과 사회적 직위 등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을 두 편으로 나눠 줄을 잡아당겨 공동체의 신명을 즐겼다. 마을을 둘로 나눠서 줄다리기를 해 승부를 결정하는데 이기는 마을은 풍년, 지는 마을은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동쪽의 주민은 숫줄을 만들고, 서쪽의 주민은 암줄을 꼬아 만든다. 암줄과 숫줄은 성교, 다산, 풍요를 연상시키는 모의 성행위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줄다리기는 원래 동남아시아의 농경과 어로를 생업으로 하는 생활권의 나라에서 주로 행해졌던 놀이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진행했다. 줄다리기를 인색(引索)이라 했으며 정월에 볏짚이나 칡으로 대줄을 만들고 여기에 소줄을 매어 용을 상징했다. 줄다리기의 줄을 용사(龍蛇)의 상징물로 인식했고, 이때 용은 물을 지배하는 수신(水神) 혹은 농신(農神)으로 여겼다. 용 모양의 줄을 당기면 비가 흡족하게 내린다고 믿었고,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용을 섬기고 자극함으로써 풍요와 다산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월 칡줄다리기는 어떤가? 영월 칡줄다리기는 단종이 복위된 숙종 이후부터 시작됐다. 정월대보름에 마을제사를 지낸 후 미리 준비한 칡줄을 모아 동강에서 동·서편으로 나눠 암·숫줄을 결합한 후 편장들의 지휘 아래 줄다리기를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1월 14일에 줄다리기가 진행된 신문기사가 있는 등 이때에도 계속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의 칡줄인지는 확인이 불가하다. 현재 진행 중인 칡줄다리기는 지속과 변화를 거쳐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원도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줄다리기는 영월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대표적인 민속놀이였다. 줄의 재료로 칡을 사용하는 것은 영월이 유일하다. 연행의 과정을 보면 시가행진을 하며 줄을 이동하고, 본격적으로 줄을 당기기 전에 용두결합을 하는데 이때 전후로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내는 것은 사고없이 줄다리기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이후 칡줄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용두를 결합한다. 결합이 마무리되면 줄당기기가 진행된다. 각 편의 편장이 주도하여 함성을 지르며 서로 지지 않기 위하여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한다. 시합이 끝나면 두편은 퇴장을 한다. 이 과정에서 줄을 끊어가는 사람이 많다. 칡줄이 가진 주술적인 의미 때문이다.

현재 줄다리기는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창녕 영산줄다리기, 삼척 기줄다리기, 의령 큰줄땡기기, 밀양 감내게줄당기기, 남해선구줄끗기, 청도 도주줄다리기, 용암강다리기 등에서 진행하며 국가 및 시도단체 무형문화재로 총 8개가 지정돼 있다. 이들 무형문화재는 목적이 대부분 풍년, 마을안녕, 대동단결이다.

영월 칡줄다리기도 목적이 대동단결이지만 여기에 단종 추모도 포함된다. 그만큼 영월 칡줄다리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특별하다.

오랜 세월 선조들이 이어온 소중한 문화적 자산인 영월 칡줄다리기를 영월 문화원형의 가치로 삼고, 이를 보존·활용해야 한다. 우리 전통을 잇는 칡줄다리기는 지역의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칡줄다리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시민의 문화적 삶을 확장시켜 나아가야 한다. 영월 칡줄다리기는 역사시대부터 이어진 민간신앙과 민속놀이로서 영월의 시대정신과 그 문화적 가치가 잘 남아 있다. 여기에 단종과 관련된 무형의 자산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는 단종이 영월군민의 마을신앙 대상체로 신격화된 증거다.

영월의 수호신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역사적 실존 인물인 단종을 민간신앙에서 신으로 봉안했고, 신격화 과정에서 영월군민은 영월의 문화적 가치를 살려내면서 현재까지 이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런 영월의 칡줄다리기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각종 전시 및 교육 등의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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