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를 배웅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를 배웅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지난 3일 월드컵 열기 속에서도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구속 뉴스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검찰이 서훈 전 실장에 대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은폐하고, 희생자를 월북으로 몰아가려 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서훈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과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안보 책임자다. 그의 구속으로 검찰의 칼날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향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다. 서훈 전 실장 구속 다음 날 직접 SNS를 통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같은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 안타깝다”는 입장을 내놨다. 퇴임 이후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램은 허사가 됐다.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이미 같은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국방부 장관과 해경청장이 구속되는 등 윤석열 검찰의 전 정부를 향한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 전 대통령은 침묵하거나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의사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서훈 전 실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이같은 그의 태도 변화는 야권을 결집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일정한 거리감을 보이던 ‘친문(親文)’의 움직임은 더욱 뚜렷하다. 이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형성됐던 ‘윤석열 대 이재명’의 구도가 ‘윤석열 대 문재인’ 구도로의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책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수사했다. 결국 많은 이들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그 때의 검찰의 칼날이 문재인 정부를 향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5년 만의 데자뷔이자, 데칼코마니가 아닐 수 없다.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대상이 되는 매체의 또 다른 모습이 그림자이다. 문재인의 그림자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남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는 진영 간 화해할 수 없는 치킨게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대상이 되는 매체의 또 다른 모습이 그림자이다. 문재인의 그림자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남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는 진영 간 화해할 수 없는 치킨게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출발점은 ‘문재인의 그림자’에 있다. 구체적으로 문재인의 그림자를 활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장악 시도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전략이다. 풍산개 반납 논란은 좀스런 대통령이 됐고, 김건희 여사의 문제는 김정숙 여사의 옷으로, 한반도 평화와 한미 동맹은 서해안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탈원전 정책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어리석은 정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기조는 자연히 진영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극단의 대결 상황을 만들었다. 소통과 협치의 실종은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전임자에 대한 냉정한 평가나 부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일반인들도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전임자를 어느 정도 부정해야 후임자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점에서 차별화는 또 다른 발전이기도 하다. 그래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전임자의 그림자를 활용한 국면전환 시도를 모두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현재의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전의 것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은 역사적 퇴보에 가깝다.

그림자는 어떤 실체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의 그림자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의 그림자가 오히려 ‘윤석열의 그늘’이 되고 있다. 문재인의 그림자라는 그늘에 일단 숨고 보자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 같은 이는 ‘문재인이라는 그림자에 헛발질하는 것’이라고 했을까. 문재인의 그림자를 키워 국면을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시도는 결국 우리 사회의 병폐인 진영 간 대결만 부추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와 협치가 불가능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의 그림자’를 ‘윤석열의 그늘’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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