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취 

때론 묵은 것들이 더 정겹습니다. 집안 곳곳을 살피다 뜻밖의 보물(?)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지요. 묵나물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름표를 붙이지 않았어도 그 나물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캤는지 흑백 무성영화를 보듯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료할 틈이 없지요. 한국인의 밥상엔 늘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산채와 푸성귀, 해조류가 날것 그대로 또는 묵나물로 올라옵니다. 나물 DNA가 알게 모르게 몸속에 박히는 셈이지요. 이 DNA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나물 생명선’이라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참취! 나물취 암취 동풍채(東風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참취는 ‘묵나물’의 대명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옛 문헌을 보면 이 나물의 기록이 흔하고, 참취의 ‘참’에서 느끼듯 나물의 으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쑥부쟁이, 부지깽이나물로 불리는 울릉취와는 엄연히 다른 종입니다.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는 풀’이라는 뜻의 부지기아초(不持飢餓草)에서 유래된 부지깽이나물은 ‘명을 잇게 하는 나물’이라는 명이와 더불어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게 해준 울릉도 특산인 반면, 한반도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참취는 민초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물이었습니다.

참취가 해를 넘기며 묵은 나물로 밥상 한자리를 꿰찬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처럼 맛은 물론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 칼슘, 비타민이 풍부해 ‘약으로 먹는 산나물’이라는 찬사가 헛되지 않지요. 통증을 완화 시키는 한편 혈액순환을 도와 심혈관 질환 치료에 유용하게 쓰이고 어지럼증이 동반된 빈혈 증상을 치유합니다. 이담작용을 도와 간의 피로를 푸는 데 뛰어나고, 변비 예방과 함께 피부미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한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대보름이 엊그제였습니다. 이날 영양 만점의 오곡밥과 견과류, 묵나물을 먹는 것은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 한해를 대비하라는 뜻이지요, 나물에 풍부한 비타민과 식이섬유, 철분을 섭취, 원기를 북돋우라는 배려! 대보름 밥상에 오르는 나물은 참취, 다래순, 곤드레, 호박고지, 고사리, 도라지, 고비 등 다양합니다. 대부분 한해 전에 채취, 말려두었던 건나물이지요. 이 나물을 불려 산채는 소금으로, 들나물은 간장으로 간을 맞춰 들기름에 볶아냅니다. 민초들의 지혜가 소복소복 담긴 한끼 밥상이 완성되는 겁니다. 한해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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