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설화 정치부 기자
▲ 이설화 정치부 기자

스물두살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었다. “거기 ‘리’도 있겠다”, “영화관은 있어?”, “부산 친구가 나보고 멀리서 왔다고”, “서울이랑 한시간 거리인데.” 서울의 한 찌갯집이 아니라 강원도 시골 마을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첫 만남이었지만, 10년 지기 친구와의 수다처럼 물 흐르듯 시간이 가고 있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 친구와 그렇게 ‘훅’ 가까워졌었나 보다.

‘출신’, 특히 ‘동향’은 짧은 시간에도 심적 거리를 가깝게 한다. 인구가 많지 않은 강원도 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튼, 산’의 저자 장보영 작가는 도입부에 인제에서의 어린 시절을 써놨는데, 책을 읽는 내내 동네 언니를 사귄 기분이었다. ‘더 설리클럽’ 등 소설을 쓴 박서련 작가가 철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동네 어디서 책을 읽었을까, 상상했다. 그러면 찬 겨울 철원의 칼바람이 콧등에 슬쩍 닿고 가는 듯했다.

출신 지역에 따라 선을 긋고 허무는 ‘지연’은 경계의 대상이라고 배웠다. 정치인을 다루는 기사를 쓸 때마다 부장 몰래 출신지를 슬그머니 빼놓은 적도 있었다. 지연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소심한 저항이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평창 출신’, ‘춘천 출신’ 등의 출신지 수식어는 항상 되살아났다.

지역에서 정치인에게 출신지는 지역을 나고 드는 ‘마패’와 같다. ‘일단’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니 ‘1차 시험’은 합격이지 않으냐는 인식이다.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한 출마자는 자신을 “오랫동안 지역을 지킨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도권에서 지내다 선거를 앞두고 고향에 돌아오는 행태를 에둘러 비판했다.

마패로 쓰고 버려지는 지역주의는 경계 대상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 챙기기로 작동하는 지역주의는 대찬성이다. 김진태 지사도 지난해 선거에서 “강원도민만을 바라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래서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찾게 됐다.

고성 출신 전상준 씨는 세월호 유가족이다. 그는 지난해 고향에 돌아와 여동생과 함께 천진 앞바다에 백반집을 열었다. 이곳은 밥시간이면 인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북적이는 동네 맛집이다. 강릉 출신 20대 A씨는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릉 지역구 권성동 의원은 서울에 마련된 장례식장을 다녀갔다. 강릉시청 직원들은 현장에서 유가족을 도왔다. 광산노동자 박정하 씨는 지난 경북 봉화 광산 매몰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매몰 당시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은 “강원 정선 출신의 우리당원”이라며 생환을 기도했다.

‘출신’ 수식어를 붙이고 나니 강원도의 일이 아닌 것이 없다. 강원도의 일은 이렇게나 넓어지고, 정치인들은 살펴야 할 일이 많아진다. 당신의 일은 나의 일로 ‘훅’ 다가온다. 출신은 더 많이 붙여져야 한다. 지역주의는 더 작동해야 한다.이설화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