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민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구정민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얼마 전 국내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정월대보름제가 삼척에서 열렸다.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무려 4년 만에 다시 삼척 정월대보름제가 열리자, 축제장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사흘 내내 북적였다. 시민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 지인들과 함께 그동안 묵혀둔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준비된 공연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며 회포를 풀었다.

우리 대표 명절인 대보름제는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음력 1월 15일 열린다. 한자로는 상원(上元)으로,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아 음력을 사용하는 농경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가지는 뜻은 매우 강하다. 정월대보름이 그렇고, 다음 큰 명절인 추석도 보름달을 중시한다. 달은 여신, 그리고 대지로 연결되는 풍요 원리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제에서는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 사발재점 등 한 해의 풍년 등을 점쳐보는 다양한 농점(農點)이 행해졌다. 이 가운데 삼척기줄다리기는 해안 마을인 부내면(府內面)과 산골 마을인 말곡면(末谷面) 쪽 두 편이 나눠 이기는 쪽이 풍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 쪽에 삼척읍성을 수리하거나, 오십천 제방을 수리하는 고된 노역이 배당됐기 때문에 해마다 격렬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정월대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한밤중에 양쪽 마을 주민들이 필사의 각오로 기줄다리기를 하며 한해의 풍년과 풍어를 점치고, 혹은 고된 노역을 피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등불과 횃불을 들고 진심을 다해 응원을 펼쳤을 것이다.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이 같은 전통을 갖고 있는 삼척기줄다리기는 2015년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벼농사권 줄다리기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필자는 올해 처음 삼척기줄다리기를 보면서 그 역동성과 화제성, 확장성 등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쯤에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은 한겨울 추운 날씨와 주민 참여, 안전 등을 고려해 낮에 시연되고 있지만, 이를 다시 옛날처럼 한밤중에 한다면 어떨까. 지금의 정월대보름제 기줄다리기는 원형보존 차원에서 그대로 유지하고, 5∼6월 비교적 따뜻한 날에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삼척해변 같은 곳에서 야행(夜行) 행사로 별도의 기줄다리기를 펼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옛날 복식을 한 사람들이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양편으로 나눠 기줄다리기를 하는 장관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여기에 달집도 태우고, 쥐불놀이를 즐기며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을 불꽃놀이 등까지 더한다면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지 않을까. 또 올해 처음 시도된 어린이 기줄다리기처럼 각양각색의 기줄다리기 체험행사를 마련하고, 중간중간 장돌뱅이 복장을 한 사람들이 삼척과 관련된 간단한 퀴즈를 시민·관광객들에게 내고 맞추든 틀리든 사탕 하나씩 준다면 그 또한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떤가. 바야흐로 뉴미디어 시대에 소위 말하는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한마디 더 보탠다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 것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언제나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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