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호색 
▲ 현호색 

봄바람은 어떤 빛깔일까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결이 아니고 색(色)? 그러다 이내 ‘바람에도 색이 있겠구나’ 긍정했지요. 사실, 바람의 색은 변덕스러운 봄날씨만큼 수만가지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지요. 풀과 꽃, 나무, 땅, 하늘, 대기가 그때그때 빚어낸 수채화 같은 결과 색! 그중 으뜸은 단연 ‘꽃’에서 이는 바람일 겁니다. 잔설이 녹기 시작하면서 들과 산은 연두색으로 치장합니다. 꽃다지, 냉이, 엉겅퀴, 지칭개, 냉이에서부터 생강나무, 산수유, 매화, 버드나무 등이 색조를 달리하며 바람을 일으키지요. 이들이 피워 낸 바람은 경이롭습니다. 빛과 색의 완벽한 조화!

이른 봄, 야트막한 둔덕을 오르거나 산기슭에 들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홍자색 꽃 무리가 온산을 뒤덮어 발 디딜 틈이 없으니까요. 수채화 물감이 제멋대로 흩뿌려져 천변만화의 색으로 불어옵니다. 빛은 빛대로 색은 색대로 그 특유의 춤사위를 선보이며 바람을 일으키지요. 이때 비로소 느낍니다. 아, 봄바람이 이런 색이구나. 놀랍지요. 그러나 홍자색 바람을 일으키는 현호색은 이런 마술을 아무렇지 않게 펼쳐 보입니다. 손톱 크기의 꽃잎을 바람에 실어 봄빛을 갈무리하는 저 놀라운 능력! 고작 2㎝도 안 되는 것이….

빛과 색, 바람으로 봄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현호색! 혼자서도 능숙하고, 무리를 지으면 그 힘과 표현이 무궁무진해집니다. 하늘빛이 검으면 짙은 보라색으로, 대기가 맑으면 옅은 홍자색으로 갈아입는 옷맵시는 현호색만의 특권! 그래서일까요. 이 약초는 자신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습니다. 뿌리에 달린 뽀얀 덩이줄기만 약재로 허용하지요. 그것도 꽃과 잎을 떨군 뒤에야 비로소. 달래의 덩이줄기보다 2배가량 큰 약재는 통증을 줄이거나 멈추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관절염과 허리통증, 타박상에 주로 처방하는데 채취 시기는 성장을 멈추고 잎이 시드는 5∼6월입니다.

현호색은 빛과 색의 약초입니다. 그러나 약초 본래의 효능보다는 눈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훨씬 크게 느껴지지요. 맑게 갠 어느 봄, 현호색 만발한 산기슭에 널브러지듯 누워보세요. 세상 온갖 근심이 봄볕에 잔설 녹듯 슬그머니 사라질 겁니다. ‘빛나는 마음, 보물 주머니, 비밀, 희소식’ 등의 꽃말도 이 식물의 효능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꽃 모양이 종달새의 머리 깃을 닮아 코리달리스라는 속명을 지닌 현호색은 그 자체가 ‘노래하는 봄’이자 ‘색의 마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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