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은숙의 인터뷰를 보면 모든 피해자가 동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경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과거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있고 그게 더 슬플 것 같았다고 말한다. 경란에게도 나처럼 매월 꼬박꼬박 내야 하는 카드값이 있었겠지만, 학교폭력을 당했던 경란이 성인이 된 현재까지 가해자들의 밑에서 부역하며 지내는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가정폭력이건 학교폭력이건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원인을 자신에게 찾으며 폭력을 감내하며 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외부의 폭력은 제어할 수 없지만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야”라며 자책하고 고통의 감각을 잃어간다고 한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부인이 “내가 맞을 만해서 맞은 거야”라며 사는 경우가 그것이다. 동은이는 자퇴하고 복수를 꿈꿀 수 있었지만,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경란은 가해자들과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로 제2의 체육관인 편집숍 ‘시에스타’로 자리를 옮겨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더 글로리인가를 생각한다.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라는 뜻을 가진 영광의 반대말이 ‘수치’라면 드라마가 말하는 수치란 뭘까. 동은이 그 옛날 자신을 외면한 친구 경란의 뒤늦은 사과에 되돌려주는 말은 “나는 더 이상 그 복도 위에 서 있지 않아 그러니 너도 그 체육관에 서 있지 마”란 말이었다. 누군가는 뜨거운 고데기로 열체크를 당하던 체육관을 자기 발로 벗어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체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어쩌면 어린 동은이가 체육관에서 “내 꿈은 너야”라고 복수를 선언한 순간 그때 문틈으로 들어온 한 줄기 빛처럼 가해자들에게 짓밟힌 영광을 이미 되찾지 않았을까.
우리는 교도소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날씨 뉴스를 전하는 가해자 연진이의 결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이 세상 모든 경란이들의 결말이다. 부디 세상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경란이들이 체육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광을 찾길 간절히 바라본다.
노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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