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은 라면을 먹었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진짜 구멍 난 신발을 신는 사람은 구멍 난 신발을 신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짜 청렴한 사람은 청렴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는다. 이웃의 가난과 지사의 청렴을 훔쳐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사는 자는 탐욕한 자다.

을사오적 이완용이 1926년 2월11일 죽었다. 동아일보가 이틀 후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일제는 불온하다며 그 글을 들어내는 조건으로 윤전기를 돌리게 했다. “누가 일대의 영화(榮華)로 능히 만고의 적막을 면(免)한 자이냐. 누가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능히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이냐”라는 명문이 담겨있다. 팔아서는 안 될 나라와 백성을 팔아 누려서는 안 될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누렸으니 만고에 역적으로 지탄을 받을 것이라는 추상같은 단죄였다.

명나라 홍자성(洪自誠)이 쓴 수신서 ‘채근담(菜根譚)’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고 나물이나 나무뿌리 같은 거친 음식을 달게 여기는 사람은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송나라 학자 왕신민(汪信民) 선생의 글에서 책 이름을 얻었다. 극한의 처지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채근담’의 전집 222개와 후집 141개의 글 가운데 맨 앞에 등장하는 제1의 가르침이 동아일보가 사설에 인용한 ‘만고에 처량하지 말고 한때의 적막함을 택하라’라는 교훈이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 때에 적막하고, 권세에 기대고 빌붙는 사람은 만고에 처량하다. 통달한 사람은 물질 너머에 있는 것을 헤아리고 육신이 사라진 뒤 자신을 생각한다. 차라리 잠깐의 적막함을 견딜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택하지 말라’

가난을 희롱하고 청렴을 사칭해 더 많은 부와 더 큰 명예 그리고 더 강한 권력을 도적질하려 했던 한 썩을 물건이 있다. 연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니 글로 적고 돌에 새겨 경계로 삼고자 한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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