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기억인지 의식인지 되새기면

타는 듯한 목마름이 한순간 지나가자

위와 아래가 텅 비었고

동서남북 사방이 없어졌고

마치 터널을 걷고 있는 것처럼

빛이나 시야가 흐려졌습니다.

그때

고향집 감나무에 풋감이 달린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소.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아세요?



“저는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100일 전만 해도 이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21세기 유럽, 한 국가의 군대가 다른 국가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아니, 이것은 디스토피아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것이 현실임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 발발 100여일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다시 정상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헤드라인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풀들이 뒤덮인 허물어진 참호에서

그의 유해가 찾아졌다

70년 만이었다

그는 머리 위로 날아드는 포탄을 피해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해는 두개골, 갈비뼈 상반신이 남아있고 그 곁에

총탄구멍뚫린 철모가 떨어져 있었는데

변식된 전투복에 국군 이등병 계급장이 붙어있었다



“유전자 감식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신은 우리 고향 출신이며 저보다 열여섯 살 더 위인

스무 살 앳된 젊은이셨습니다.

당신은 70년 전 초여름 전투에 투입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던 이등병이셨습니다.

당신의 유복녀, 당신이 혼인한지 열흘만에 징집될 때

당신의 아내가 유복녀를 잉태했고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어느새 70살이 훨씬 넘은

당신 따님이 전화를 해줍니다.”



“올해도 고향집 우리 마당 뒤란

감나무에 감꽃이 피었네요”

*베를린 타게스슈피겔(Berlin Tagesspiegel) 기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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