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재순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
같은 부제 아래 연작시 100편 수록
고독·희망·기억 등 ‘집’으로 비유

백 칸짜리 집을 지은 시인이 있다. 그집 곳곳에는 눈물자국이 남아있다. 하지만 곧 따스한 볕이 들고, 잎사귀의 파안대소로 채워지기도 한다.

속초 중심으로 활동하는 채재순 시인이 최근 다섯번째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을 펴냈다. 시인은 이 책에 “집이 말하려 하는 것을 받아적은 나날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기꺼이 자신의 집이 되어주고 몸을 내어준 이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매화나무-집1’부터 마지막 시 ‘흔들리며 흔들리며-집 100’까지 모두 ‘집’을 부제로 한 연작시들이 한 권을 채웠다. 2018년 여동생에게 신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한 시인이 휴식 후 다시 쓰기 시작한 작품들이다. 연작시를 1부터 100까지 순서대로 싣지 않고 △북향집 △두고온 집 △원추리 꽃집 △둥근 집 △산 아래 그 집 등 5부로 나눠 배치했다.

시인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들은 “마음까지 온전히 스며드는 저녁노을을/필사하는 집”(‘북향집-집 48’ 중)을 들여다 봤다가, “밥 안치는 것도 잊고/하염없이/집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도 도는/봄날 저녁(봄날-집91)”을 마주한다. 스승(최명길 시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켜진 배롱나무 꽃등 방도 있고, 매화 핀 허난설헌과 이황, 윤희순의 집 앞마당도 이 시집 속에 있다.

집 바깥에 있거나 집을 잃은 이들도 생각한다. 고성 산불의 아픔, 매년 줄어드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특히 그런 듯하다. ‘탁본, 2022 동해안 산불-집99’에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새·벌레·산짐승들의 집을 생각하고, ‘꿀벌-집92’ 에서는 “이 나라의 미래 몇 태운 스쿨버스 덜컹이며 달려가고 있다”고 맺으며 걱정을 숨기지 않는다.

박대성 시인은 해설에서 “집은 울기 좋은 자리다. 그 울음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은 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또다른 ‘나’들”이라며 “시인은 집 이야기를 하면서 고독과 아픔, 울음을 울고 있지만 멈춤없이 희망을 쏘아올리기도 한다. 채재순은 ‘집 채재순’에 산다”고 했다.

두고 온 것이 있는 집, 수없이 지었다 허무는 집… 시집을 통해 100가지 집에 들어갔다 올 수 있다. 옛집을 떠나 마주했던 막다른 골목을, 아무도 모르게 울었던 구석진 방을. 그래서 함께 미어졌을 ‘그집’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할머니 같은 집에서 우리는 버릇없게도 벌러덩 누워 뒹군다. 잊히고 쓰러지는 순간까지 내 허물을 덮어줄 집이기 때문이다.(‘집은 나보다-집157’)

긴 여름 밤. 시인이 권하듯 이제는 집의 말을 들어 볼 차례다. 채 시인은 춘천교대와 강릉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4년 ‘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강원문학작가상을 수상했고, 설악문우회, 물소리시낭송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성 광산초교 교장으로 근무중이다.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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