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질 높은 나라 1위 영국
우리나라는 18위 차지
어르신 마지막 소원 내용
고향 가기·바다서 회 먹기
산에 마지막으로 올라보기
당장 할 수 있는 소박한 것들
하루하루 최선 다해살아가는
‘웰리빙’의 삶이 결국
죽음 염두한 존엄한 삶 ‘웰다잉’

▲ 이은영 강원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원장
▲ 이은영 강원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원장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간한 ‘2015년 죽음의 질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죽음의 질이 높은 나라 1위는 영국, 우리나라는 18위를 차지했다. 이는 임종을 앞두고 이용할 의료기관 수, 치료의 수준, 임종과 관련된 국가 지원 및 의료진 수 등 20가지 항목을 조사한 결과로,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이며 좋은 죽음으로 향해가는 존엄한 삶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세계에서 죽음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 영국은 2008년부터 정부 주도로 ‘생애 말 돌봄 전략’을 시행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전략에서 좋은 죽음에 대해 첫째 고통이 없이, 둘째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셋째 익숙한 환경에서, 넷째 가족·친구와 함께하는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죽음을 고민하는 민관합동 기구를 만들어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고 적극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생애 말 돌봄의 필요성을 대중이 인식하도록 한 것이 정책 성공의 주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그 결과 생애 말기에도 집, 병원, 호스피스 등 어디서든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병원보다 집이나 주거용 요양시설에서 사망한 비율이 급증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8년 이른바 김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2016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사가 확인되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다. 다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면 건강한 상태에서 등록기관을 방문·상담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 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이를 관리하는데, 6월 말 현재 전국에서 184만1795명이 의향서를 작성했고 그중 강원도민은 3.5%이며 도내 의향서 작성기관은 42곳이 있다.

전국 100개 이상의 자치단체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또는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 2019년 ‘강원특별자치도 웰다잉(Well-Dying)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것을 비롯해 강릉·동해·속초·원주·인제·춘천·홍천 등 도내 7개 기초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됐다. 이 조례에서는 웰다잉(well-dying) 문화를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여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문화’로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자치단체가 다양한 교육 및 홍보사업, 임종 준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실효성 있는 변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통계청이 제시하는 연도별 사망자의 사망 장소는 2000년 의료기관 35.9%, 자택 53.3%에서 2021년 의료기관 74.8%, 자택 16.5%로 나타난다. 20년 사이 집보다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한 연구에서는 한국인이 마지막 10년 중 5년을 투병하며 병원에서 지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는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 많은 노인이 임종 장소로 자택을 가장 선호한다고 나타난 것과 사뭇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웰다잉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어느 노인복지기관에서 어르신들의 마지막 소원 들어드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태어난 고향마을에 마지막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동무들을 만나고 싶다, 동해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회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것, 이제는 몸이 불편하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젊은 시절 그리 좋아하던 산에 마지막으로 올라 보는 것, 자손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 최선을 다해 선한 삶을 살았던 할아버지로 기억되는 것. 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어르신들이 바라는 소원은 너무나 소박했고 우리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상의 것들이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웰리빙’의 삶이 결국 죽음을 염두에 둔 존엄한 삶, ‘웰다잉’임을 깨닫게 된다.

지난 6월의 마지막 날, 도사회서비스원과 춘천지혜의숲이 공동주최한 웰다잉포럼이 열렸다. 춘천시청에 마련된 포럼의 장에 3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영국의 경우처럼 대중의 관심과 사회 인식의 변화, 민관합동 기구의 실질적 활동,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함께 만나 건강하고 완전한 웰다잉, 웰리빙 강원이 만들어지는 날을 기대한다.이은영 강원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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