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인사발령 시즌 때면
많은 기업이 왜 민감해하는지
담당자 변경으로 보류 또 보류
콘텐츠 기획 실행하는 팀에게
사전논의는 곧 기획인 셈,
계약이 무산된다면 그 시간과
노력·아이디어 어디로 가는 걸까

▲ 윤한 소양하다 대표
▲ 윤한 소양하다 대표

며칠 전 김소연 시인의 신간 ‘촉진하는 밤’을 구입했다. 뜨거운 여름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책 제목도 좋았지만 뒷면에 실린 작가노트 한 줄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사라지는 일에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삶의 의지일 수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상기해 내면서.’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7월 밤, 나는 새벽에 소파에 누워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제가 다른 부서 발령이 났어요”

이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올여름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 알았다. 가을을 앞두고 재밌게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제 막 프린터로 뽑아 오탈자를 교정하려던 참이었다. 철-컥, 철-컥 하고 프린터가 한장 한장 종이를 내릴 때 들리는 소리가 참 좋다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절반은 순진, 절반은 무지하게도 꽤 오랫동안 소통했던 담당자가 떠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던 나는 정식으로 부서를 옮기기 전에 시원한 냉면 한 그릇 함께 하자고 답장했다. 문자에 ‘읽음’이 뜸과 거의 동시에 절친한 모 기업의 대표님이 카톡을 주었다.

같이 하면 좋았을 텐데, 담당자가 바뀌어서 전면 보류됐어요.

아이고, 정말 안타깝네요… 라고 타이핑을 치던 내 손가락 사이로 싸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담당자가 바뀌어서 보류됐어요. 바뀌어서 보류됐어요. 보류. 保留(지킬 보, 머무를 류).

‘보류(保留):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둠’

아니나 다를까 부서 이동이 확정된 담당자가 전화를 주었고, 미리보기처럼 만난 두 글자가 내 귓속에 들어왔다. 계약을 앞두고 있던 일이 보류되었다. 지자체에도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담당 공무원 부서도 변경되었다. 신뢰가 비교적 두터웠던 터에 사정을 전해 듣고, 일의 추진 방법을 안내받았지만 담당자가 모두 바뀐 탓에 거듭 설득이 필요했다. 그제야 왜 지자체 인사발령 시즌 때면 많은 기업이 민감해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후로도 몇차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당초 기획했던 일의 취지나 진행 방향, 시기가 모두 틀어져 사실상 무산되었다. 한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안타까움으로 남았겠지만, 유사한 형태로 타격받는 기업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터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흐려지는 말끝에서 느껴지는 허탈함이 누구보다 선명하게 새겨졌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계약 이전에 ‘사전논의’ 단계였고, 합의 과정이 완료되어야 비로소 ‘계약’이 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팀들에게 사전논의는 곧 기획인 셈인데, 계약이 무산된다면 그 시간과 노력, 아이디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안타깝네요. 그래서 계약 전에 일을 하면 안 되나 봐요.’와 같은 소리는 콘텐츠 기획을 주업으로 하는 기업에게 화살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정책회의, 청년 창업가-기업 간담회 등에서 나는 줄곧 ‘기획비’ 항목 책정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회의 참가자 모두가 끄덕이며 ‘기획비’의 중요성에 대해 동의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바꿀 수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획비’가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경우 기획비를 다른 항목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했으나, 나는 ‘기획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사례와 고민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맥락을 만드는 것이 곧 기획인데 기획비를 없애면 우리는 머리 없는 팔다리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 ‘기획비’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답답한데, 담당자 인사이동으로 기획한 일이 ‘보류’되는 현실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비단 사람의 이동뿐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 하던 일과 이름이 모두 바뀌어 버린다. 어떤 경우엔 보류된 기획안이 돌고 돌아 유사한 내용으로 입찰공고가 나기도 한다. K-콘텐츠, 콘텐츠강국이라 자칭하는 우리나라가 이런 시스템으로 일이 기획되고 운영된다는 점이 씁쓸하다. 새벽녘 거실에 나와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틀고, 씩씩거리며 누워있는 사람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유사한 일을 겪고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지역의 동료들에게 나는 응원의 손길을 보낸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담당자와 마구잡이로 바뀌는 정책을 믿고 일을 할 수 있는가.

사라지는 일에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나라면, 적어도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

왜 우리나라는 ‘일’의 본질이 아닌 담당자와 정책을 중심으로 일이 추진되는 걸까. 그렇게 흔들리는 일일수록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약해진다는 점을 부디 알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늘 본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질을 지키는 의지에서 도시의 힘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소연 시집 ‘촉진하는 밤’ 의 작가노트 일부를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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