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유정 연출가
변유정 연출가

길고 긴 추석연휴가 지났다.

이번 추석을 보내는 방법으로 가족 만나고, 여행 가고, 고향 온 친구 만나고, 음식 만들고, 늦잠 자고, 아시안게임 보고, 넷플릭스 몰아보고, 아주 둥근달도 보았을 듯하다. 궁금한 마음에 다음 황금연휴는 며칠이나 될지 달력 뒤져보며 2025년 추석 연휴가 10일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했을 많은 분이 계실 듯도 하다.

이번 길고 긴 추석연휴를 우리 가족은 좀 특별히 보냈다. 명절에 모이지 않기. 한마디로 ‘밥 약속’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밥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마음을 담고, 마음 쓰며, 마음 읽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약속은 ‘밥 약속’이겠다. 입으로 내뱉은 ‘밥 한번 먹자’ 그 약속은 그 순간 진심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키기 힘든 일은 없는 것 같다. 또 한 이 말 한마디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무서운 한마디이기도 하다.

‘밥 약속’을 하지 않은 이번 추석. 음식 솜씨가 빼어나신 엄마는 처음으로 음식 장만을 하지 않으셨으니, 좀 편하셨을까? 우린 모두 각자의 노릇에서 벗어났으니 좀 편했을까? 이런 특별한 추석 덕에 레스토랑에서 엄마와 둘만의 식사를 하며 마음 넉넉한 사장님이 내어준 2알의 송편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떡이 반갑기까지 하니 가족과 밥상을 마주하지 않은 이번 추석 끝은 ‘허전함’이었다.

허전함에는 친한 동료들을 만나야 한다. 연휴기간 중에도 창작의 시간은 존재한다. 이지현 연출이 선보이는 횡성한우축제의 주제 공연 연습이 있다는 소식에 응원차 오랜만에 춘천 ‘공연예술연습공간’을 방문했다. 혼자 먹는 밥이 흔해진 지금, 모두가 함께 밥상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는 따뜻한 주제를 갖는 ‘그리운 모두의 밥상’을 멋진 30여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연습 리허설을 보며 내년에 꼭 다시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 친척들과 함께 밥상을 마주하는 추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좋은 공연이 만들어져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음식 준비와 공연 준비도 참 많이 닮았다. 정성 어린 맛있는 음식 준비하듯 한 작품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공연 짓는 ‘공연예술연습공간’을 도민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자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지역예술인에게 최적의 연습환경을 제공하고, 다양한 공연예술분야에서 참신한 창작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으로 대·중·소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전국 각 지역 20곳에서 운영되며 강원도는 무려 3곳. 춘천, 원주, 영월 지역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방시대를 맞아 예술을 통한 지역문화는 더욱 특별함이 요구되는 이때, 공연과 축제가 넘쳐나는 넓은 강원도는 창작자들을 위한 공연짓는 쾌적한 연습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창작의 기본도 연습, 완성도의 기본도 연습이니까.

강원도는 강원문화재단 협력기관으로 15개 지역 강릉·원주·인제·정선·춘천·홍천·고성·양구·양양·철원·태백 문화재단과 속초·영월·횡성·동해 문화관광재단이 설립되어 있는데 이 모든 곳에 도민과 예술인을 위한 연습공간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 올림픽을 치른 강원도 아닌가. 기본이 되는 창작연습실이 모든 지역에 마련된다면 도민들을 위하는 강원도의 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하겠다.

올해도 벌써 이렇게 10월이 되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지키지 못한 오래 묵은 ‘밥 약속’ 있다면 술도 한잔 곁들이면서 얼굴 마주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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