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미술작가
▲ 김수영 미술작가

몇달 전이었습니다. 눈에 초점을 풀고 걷다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들려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기에 고개를 살짝 돌려보았죠. 수박 밭 한 가운데에 원두막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금빛으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죠.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1시에 마주한 밤 풍경이었습니다.

몇달 전이었습니다. 눈에 초점을 풀고 걷다가 스피커에서 ‘쓰피오-쓰피오’하며 우는 매미소리가 들립니다. 수박을 쌓아 팔고 있는 매대 뒤에는 단단한 판자로 만든 원두막 입간판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는 금색 별 모양 풍선들이 반짝이고 있었죠. 평범한 주말, 마트에서 겪었던 생경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비일상적인 순간들을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2020년부터 시작된 플랜테리어 열풍이 있죠. 우리 일상의 주 무대가 코로나로 인해 바깥 공간에서 안으로 제한되었던 시기, 시간이 지날수록 야외의 것들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었던 바깥의 것들을 갈망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야외 활동에 대한 열망은 화분에 심어져 있는 녹색 식물들로 옮겨가 하나 둘 씩 방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집 근처 공원부터 저 먼 곳 어딘가에 위치한 정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저마다의 갈증이 해소될 만큼 그들을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유행에 몸을 실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죠.

▲ 작품 설명┃최근 작업 하다가 문득 어떤 이미지나 지향을 좇아가는 우리를 바라보니, 마치 북극성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옛날 항해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과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마음에서 북극성을 그리는 작업들을 조금씩 진행중입니다. 이미지적 모티브는 시론에도 적혀 있듯 마트를 지나치며 마주친 별모양 풍선입니다.
▲ 작품 설명┃최근 작업 하다가 문득 어떤 이미지나 지향을 좇아가는 우리를 바라보니, 마치 북극성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옛날 항해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과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마음에서 북극성을 그리는 작업들을 조금씩 진행중입니다. 이미지적 모티브는 시론에도 적혀 있듯 마트를 지나치며 마주친 별모양 풍선입니다.

이외에도 이자카야에 장식된 엉터리로 적힌 일본어들, 태국인지 베트남인지 정확한 국적을 알 수 없는 쌀국숫집 인테리어, ‘바깥의 혹은 숲 속의 상쾌한 바람을 방 안으로 들여보세요’와 같은 카피를 내세운 깊은 숲이 프린팅 된 패브릭 포스터까지.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일상의 영역들을 평범한 나날 한 가운데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복적인 일상을 더욱 건강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일상적 순간들이 뒷받침 되어 주어야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적당한 연출을 통해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잠시 몸을 담갔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켜줄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마치 마트를 지나가다, 존재하지도 않는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여름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풍경을 실제로 마주한 양 그날 하루가 행복해졌던 저처럼 말이죠.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요? 가끔은 비일상의 순간들을 녹여내는 과정 속에서 과한 변형과 상품화를 통해 그 원형을 잃어버리거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지적 경험과 그에 대한 공감이 주된 키워드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소통 방식 때문이겠죠. 덕분에 적당히 비슷한 외형이나 냄새를 풍기는 대체품만으로도 적당히 실제에 상응하는 경험을 했다며 만족하고 넘어가버리는 듯합니다. 실제로는 10분의 1도 재현해내지 못했을 만큼 전혀 다른데도 말이죠.

경험을 하고, 경험으로 소통하고, 경험에 공감하는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는 ‘진짜’란 더이상 중요치 않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풍경을 소비하고 거닐며 하는 ‘상상’과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대리 경험’만으로도 지내는 데에 지장이 없어져 버린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과연 좋은 현상일지, 아닐지는 조금 더 두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아직은 또 다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동력으로 누군가가 제시한 비일상적인 순간들을 잠시 만나고 오는 것 만큼이나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본질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 있는 오브제들을 보며 마치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고 상상하는 우리들을 보면 그것이 마냥 좋게만 볼 일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의 경험은 어디까지 대체될 수 있을까요?


김수영 작가의 ‘Pole star’ 시리즈는 강원디자인진흥원에서 11월 19일까지 열리는 ‘에코아트페어-제로섬씽2023’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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