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예사롭지 않다. 이른 봄 2월 17일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우크라이나에서 장기소모전의 늪에 빠진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구매하려 한다며 경고한 바 있다.

짙어 가던 북·러 무기 거래와 군사 밀착 의혹은 7월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소위 ‘전승절’ 70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 참석한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 ICBM ‘화성-18형’ 등장에 거수경례로 화답하며 가시화된다. 당일 김정은 총비서 안내로 ‘무장장비전시회-2023’을 참관하며 ‘제국주의자들의 강권과 전횡’에 맞서자며 의기투합했던 쇼이구 장관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용인하고, 더 나아가 경의까지 표하는 스틸 컷을 연출한 것이다.

급기야 9월 12∼17일 김 총비서가 직접 러시아를 순방한다. 수호이 전투기 생산공장 등 군수공업 관련 시설들을 시찰했고, 13일에는 보스토치니 우주 기지 내 발사체 설치·시험동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동한다. 국제사회로부터 열외국가(pariah state) 간 담합 모임으로 질타받은 이 수뇌회담에서 군사 협력 증대 및 기술 이전 방안 등 ‘공개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 관한 깊은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포탄 등 무기류를 적재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발 러시아행 화물열차가 포착되는 등 군사 공조가 더욱 구체화하는 정황이 연이어 탐지된다. 얼마 전 방북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상은 10월 19일 김 총비서를 예방한 자리에서 ‘쌍무적련계’ 확대를 논의한 데 이어, 최선희 외무상과의 회담에서는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정세’에 ‘공동행동’ 강화로 대응해 나갈 것을 합의한다. 반미 공동 전선 구축에도 손을 맞잡는 형국이다.

평양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한미동맹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준의 핵전력을 갖추기 위한 핵무력 고도화계획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거듭된 위성 발사실험 실패가 보여주듯 정밀 기술 부족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으로 인공위성 제작 및 발사,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잠수함 발사 SLBM 정교화 등과 관련된 핵심 기술 이전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 확대로 경제난을 완화하고, 제재 포위망 돌파 교두보를 확보하는 효과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심각한 제재와 외교적 고립으로 거릴낄 것이 없게 된 북러가 공조하며 노골적으로 국제사회에 도전하는 형국이다. 간전기(間戰期) 위기의 20년간 벌어졌던 현상 도전 세력들의 이합집산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북러 결착을 단순히 군수품 조달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주의 분산을 노린 러시아식 연계 전략의 소산으로만 볼 수는 없다. 미국과의 갈등 수위 조절을 위해 대러 지원에는 신중을 기하며 오히려 러시아의 뒷문 텃밭 중앙아시아와 극동에서 은근히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푸틴의 속내를 간파한 평양의 전략적 행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러 간 알력과 경쟁을 비집고 들어가 최대한 활용하는 북한의 전통적 등거리외교가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러시아의 지원과 관여 증대를 통해 편중된 대중 의존도 심화가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중국의 지원 확대도 압박하는 이중 포석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미·중, 미·러 간 대립 구도에 편승하면서 현상 질서에 도전 중인 중·러를 깊숙이 연루시켜 한반도를 지정학적 검투장으로 몰아가는 북한의 전투적 진영결속 전략이다.

북-러 밀착은 반미 연대의 첨병을 자처하며 신냉전의 갈등 증폭에 집중 투자하는 평양 ‘위기 비즈니스’의 또 다른 산물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위기의 시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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