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예 동해 청년공간열림 센터장
박지예 동해 청년공간열림 센터장

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동해시로 이주하며, 청년센터에 입사했다. 입사 시기가 시기인지라 입사 전 진행된 사업의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시에 차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동해시 청년들을 지원하겠다고 호기롭게 입사했지만, 부끄럽게도 당시 나는 동해시 청년들을 만나본 적도 없고, 대학이 없는 지역에서 청년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지역 청년들이 원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당장에 사업 계획을 수립해야 했기에 수요조사를 진행할 시간은 없어, 기존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결과나 동해시 청년기본정책 추진방향 연구(설문조사 응답자 200명 중 청년은 11%만 참여)와 같은 자료를 살피고, 주변 의견을 구했다.

그때 가장 많이 확인한 의견은 ‘서울에서 했던 걸 해주세요’, ‘취·창업 지원이 제일 필요해요’였다. 그렇게 사업을 계획했고, 1월이 돼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했다.

급할 때일수록 돌아가라던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프로그램 참여자 모집 결과는 답보였다. 가장 필요하다고 했던 취·창업 프로그램은 모집 기간을 연장해도 모집이 잘되지 않았다.

반면, 문화예술 프로그램에는 적게는 모집 인원의 5배, 많게는 10배까지도 신청자가 몰렸다. 주제가 달라야 하나, 1:1로 지원해야 하나, 강사가 다양해야 하나 등을 고민하고 취·창업 프로그램에 변주를 주며, 몇 개월간 다양성을 꾀했음에도 결과는 동일했다. 결국 수요조사를 통해 청년들에게 직접 필요한 프로그램을 물었고, 응답한 청년 70%가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택했다.



‘아차’ 싶었다.



청년의 목소리가 제대로 담기지 않은 결과들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니 청년들에게 가닿기는커녕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동해시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었는데, 다른 세대의 의견과 타지역에서의 내 편협한 경험 값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렸던 것이 패착이었다.

지역은 소멸을 걱정한다. 그리고 지역 소멸의 해결책으로 청년이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며, 흔히 취·창업 지원을 카드로 꺼내 든다.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청년정책 중 하나이다. 지역에 머무는데, 일자리는 중요한 선택사항이기에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지역 마련과, 진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원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내가 들어갈 자리는 더 없는 현실에서 참여하는 취·창업 프로그램은 환상일 뿐이다. 청년들은 허상을 좇기보단 성과가 명확한 것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 참여한다.

또한 일자리가 전제되지 않은 취·창업 지원은 오히려 청년들의 타 지역 이주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읽히기도 한다. 실제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면접정장 대여 사업에서 면접 정장을 빌리는 청년 중 지역 내에 면접을 보러가는 경우는 20% 정도다. 30%는 강원도내 타 지역으로, 50%는 수도권으로 면접을 보러 간다.

청년정책과 인구정책이 동일시되는 건 속상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둘이 지역에서 분리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해 왔기에, 청년이 지역에 머무르는데 취·창업 지원이 필요한지, 문화예술 지원이 필요한지, 혹은 새로운 무엇인가 필요한지 살피는 게 필요한 시점이진 않을까.

‘청년지원이라면 취·창업지원이지!’라는 과거의 답습으로,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뇌피셜로, ‘다른 지역에서 잘 됐으니까’라는 맹종으로, ‘보조금이 많이 교부될 수 있는 주제니까’라는 예산중심 사고가 지속된다면, 청년은 계속해서 잡히지 않는 알알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청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행정에서 호명하듯 지역의 미래가 청년이어서 지역 안에 머무르길 원한다면 청년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할 시기도 가까워지고 있다.

나도 잊지 말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