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출신 박정대 11번째 시집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시인 박정대가 고향 정선으로 돌아간 지 1년이 지났다. 종종 문학강의도 나가지만 별다른 일 없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영화를 보다 뒹굴거리는 일상을 보낸다고 한다. 시인의 작업실인 ‘이절에서의 눈송이 낚시’는 이제 ‘감정의 무한공화국’이 됐다.

박정대 시인의 11번째 시집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이 나왔다. 여전히 그의 시는 산문적인 경향이 짙지만 이전보다 많은 것을 덜어냈다. 한밤중에 닉 케이브, 톰 웨이츠, 김광석, 빅토르 최의 음악을 들으며 읽을 것을 권한다. 언뜻 비슷한 풍경과 말이 변주곡의 형식으로 반복된다.

“감정은 사상 이전의 사상”이라는 이태준 소설가의 말에 박정대는 동의한다. 통제 불가의 ‘첫’ 감정들은 “아직 오지 않은” 옛날로부터 온 것이며 슬픔과 고독을 지향한다.

“나는 늘 등외에 있는 삶이었고 세상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삶을 꿈꾸었소/(중략)/침묵의 함성이 하나의 행성이 되는 시간이 오고 있소”

표제시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은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시작된다. 앞에 언급한 예술가들은 모두 시인의 “열혈동지”다. 오랑캐가 누구고, 박정대가 누구냐고 묻지를 말자. 박정대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노력은 헛수고다. 낭만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독이 될 수 있다.

시인은 ‘어떤 저항의 멜랑콜리’를 그리워한다. “무섭도록 아름다웠던 꿈”과 근원적인 저항의 감각이 독자를 이끈다. “한때 모든 노래는 사랑”이었고 “혁명”이었다는 인식이 박정대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의 혁명과 사랑은 눈보라와 같의 허공으로 흩어지기에 낭만적이다. 시 ‘오슬로행 야간열차’에서는 “저 끝없이 펼쳐진 지속가능한 슬픔은 누구의 몫인가”라고 묻는다.

장정일 작가는 해설 ‘박정대를 여행하는 불꽃과 눈송이와 밤을 위한 안내서’에서 박정대를 “당당한 낭만주의자”로 규정한다. 문학계에서 지탄될 수 있는 ‘상호텍스트성’을 자유롭게 시도한다는 분석이다. 장 작가는 “그의 재탕은 반복·변주를 통해 세계를 낭만화하는 것과 연관 있다”며 “수축보다 확장이 더 우세했던 그 동안의 시작이 수축으로 심화되는 첫 번째 시집이며, 새로운 출발로 보인다”고 평했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은 눈송이가 충만한 겨울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밤새 내리는 눈을 기다리며 박정대의 시를 읽을 때가 됐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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