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5주기 추모행사 춘천 지하상가
제자 모임 ‘내일의 시’ 주최
문학 특강·시 낭송·공연 등
“보편적 시 통념 깨는 시학 펼쳐
선적 사유 일상·무의식 해체”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 마리의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이승훈 시 ‘사물 A’ 중)”

한국 포스트 모더니즘 시학의 대표 주자로 ‘비대상 시’를 관철했던 이승훈(사진) 시인의 5주기 ‘추모의 정’ 행사가 오는 5일 오전 11시 춘천 지하상가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다.

이승훈 시인의 제자 모임인 ‘내일의 시’가 진행하는 행사다. 이승훈 시인의 아들 이상규 씨의 인사말에 이어 시인의 오랜 문우였던 전상국 소설가와 춘천교대 시절 제자로 인연을 맺은 최승호 시인이 추모사를 읊는다. 춘천 지역 시인과 제자들의 시 낭송이 이어지며 주병율 시인, 강동우 평론가가 시 세계를 강의한다. 이승훈 시인이 작사한 ‘당신의 방’을 음악으로도 선보인다.

이승훈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래도록 침묵으로 말해왔던 시인이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해체하고 초월하는 ‘자아불이’의 글쓰기다. “결국 남는 것은 쓰는 행위뿐”이다. 무의식으로 표출되는 자유로운 언어는 그의 시론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불교의 선사상을 바탕으로 시와 시론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를 써 내려갔다.

주병율 시인은 “이승훈은 시에서 현실의 재현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인과성과 계기성이 깨어져서 혼돈의 상태를 드러낸다”며 “‘나’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어디에나 있다는 선적 결론을 도출하며 시의 통념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이어 “보편화된 ‘시’의 의미를 부정하는 그의 시론은 부정을 부정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조화가 아닌 파편으로 시쓰기를 진행하는 것”이이라고 강조했다.

강동우 평론가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특이한 것은 선이 성취하는 세계관이나 관념을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선적 사유의 틀 속에서 자신의 일상과 시론, 무의식을 노래한다는 점”이라며 “그는 언제나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언어를 겨냥해 본능적으로 질주하는 시 쓰기의 전방 위에 서 있었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이위발 시인은 “이승훈 시인은 미래파 시인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며 “선생에 대한 그리움의 파편을 모아 작은 자리를 마련했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16일 별세한 이승훈 시인은 춘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물 A’·‘이것은 시가 아니다’, 평론집 ‘영도의 시쓰기’·‘선과 하이데거’· ‘포스트 모더니즘’ 등을 펴냈다. 만해대상, 이상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고 2008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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