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응석 연세대 글로벌엘리트학부 교수
▲ 박응석 연세대 글로벌엘리트학부 교수

올 여름 지구가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자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의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지구열대화는 ‘끓어오르는 지구’라는 뜻의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을 번역한 것인데 확실히 따뜻해지거나 데운다는 의미의 ‘온난화(Warming)’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깊은 인상이 ‘나’를 넘어 ‘우리’를 향하면 그것은 새로운 ‘이름’을 얻어 사회 구성원들이 그 이름에 주목하고 그 인상을 공유하게 한다.

이탈리아의 한 기상 웹사이트는 이번 여름 유럽 전역을 덮친 폭염을 ‘케르베로스’와 ‘카론’으로 명명했다. 케르베로스와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괴물과 저승의 뱃사공이다. 유럽에서 ‘살인(적인) 폭염’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사망률을 크게 높인 점을 생각하면 그 이름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부 과학자나 언론은 이런 자극적 용어의 사용이 적합한지 의구심을 표한다. WMO(세계기상기구)도 성명을 통해 단일 폭염에 이름을 붙이면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폭염 대응법과 위험에 처한 사람들처럼 주목해야 할 사안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고, 폭염과 관련된 분석 시스템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아직 극한 기온 현상에 대한 국제 표준 분류법이 없는데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혼선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지옥이나 저승을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이름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분석 시스템이 충분히 발달한 후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무질서는 항상 언어를 통해 질서를 부여받으며 유용한 지식이 됐다. 문명(文明)의 역사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언어로 밝힌’ 역사다. 물론 당장 그 이름에 담긴 지식이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그 부족함조차 모든 개선의 기초가 된다. 마치 우리가 팔꿈치가 아플 때 팔꿈치가 정확히 팔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확정하기 어렵더라도 일단 ‘팔꿈치’라는 ‘이름’이 생기면 아픈 곳을 타인과 이야기하고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것과 같다.

스페인 폭염에 이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았던 세비야대 물리학 교수는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예측도 어렵고 기본적인 기후정보만 전달하는데 건강정보 등 더 많은 내용이 표현돼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성 시스템은 ‘45도’라는 식의 기후정보만 담고 있는데 “내일은 45도로 예상됩니다. 과거 기록을 보니 사망 위험이 높은 날이네요. 노인, 임산부 등은 반드시 실내에 머물러 주세요”처럼 구체적 내용까지 전달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거예요”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는 그들의 고유한 사랑이 사회적 시선에 갇히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주목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에는 ‘표현’을 통한 관심이 필요하다. 가을은 더 짧아졌고 겨울은 더 추워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파가 초과 사망자 수를 늘릴 것으로 예상되고 그 피해는 대부분 의료 접근성이 낮은 취약 지역이나 쪽방처럼 고립된 공간에 몰릴 것이다. 이번 겨울, 우리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많은 관심과 따스함이 스며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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