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른 회사 선배 여기자의 워킹맘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결혼까지 했던 그녀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괜스레 남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일과 아이가 아팠을 때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던 시절까지 육아를 병행하는 대한민국 모든 여자가 이해할 만한 일들을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여성들에게 응원을 부탁한다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나 역시 회사에서 임신한 동료에게 따듯한 안부 인사 한번 건넨 적이 있었나 반성하면서 말이다. 절대 쉽지 않았을 시간을 버텨냈을 그녀에게, 현재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또 다른 그녀들에게 문득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내 어머니는 매일 아침에 나가서 늦은 밤에나 일을 하고 돌아오셨다. 남들처럼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쉴까 말지 한 고된 삶을 살았던 어머니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나를 알뜰살뜰 챙겨주진 못했지만, 소풍을 갈 때면 잊지 않고 김밥을 싸주셨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떠 김밥을 싸는 엄마 앞에서 김밥을 하나씩 받아먹는 재미가 있었던 그런 시절. 어릴 때는 소풍날 집에서 싸준 ‘엄마 김밥’을 먹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당연한 건 없었다. 평소보다 몇 시간씩 일찍 일어나 새 밥을 하고 김밥 재료를 다듬는 고된 노동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말이다. 성인이 된 후부터 김밥을 먹을 때마다 내가 엄마였다면 도저히 아침잠을 포기하고 김밥을 싸주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당시 엄마는 나에게 최고는 아니었을지언정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김밥은 그 시절 어머니의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증거였다.

늦었지만 어머니에게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김밥을 싸주셔서 감사하다고. 세상에는 많은 김밥이 있지만 그 시절 내가 먹었던 김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고. 하지만 아이에게 김밥을 싸주기 위해 새벽부터 일찍 일어날 필요 없이 가끔은 사 먹는 김밥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노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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