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마저도 시간이 없다면 챗 지피티(Chat GPT)의 3줄 요약 아래. <읽는 시간 17초>

1 분초사회는 현대 사회에서 시간을 금과 같이 소중히 여기며, 1분 단위까지 시간을 정확히 관리하고 이를 업무나 선택에 활용하는 추세다.

2 선택의 기준이 ‘실패 없는 선택’으로 변화하여, 영화나 제품 선택에서도 리뷰 확인 등 시간을 정확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3 분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빠른 속도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여유와 사색을 추구하는 여백이 필요하며, 소중한 순간과 깊은 경험을 함께 쌓아가야 한다.

“이동 중, 약 4분 후 도착” 택시호출앱 알림 메시지다. ‘시간은 곧 금’이라는 경험경제 시대에서는 과거 소유경제 시대에 중요시 여겼던 돈 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진다. 촌각을 다투는 요즘시대에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 업무나 자기관리에 활용한다. 가격대비 성능비를 따지던 ‘가성비’ 보다 ‘시성비’를 따지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시간을 두루뭉술하게 10여 분 단위로 나누는 것이 아닌 1분 단위로 나눠 하고자 하는 일의 종료시간을 정확히 예고한다. 이를 음식배달, 택시 호출 서비스에 활용해 정시성을 알려줌으로써 “당신은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어”라고 느끼게 한다.

분초사회의 재미있는 하위현상 중에 ‘실패 회피’라는 개념이 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유튜브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확인하고 이 작품이

내가 좋아하는 플롯과 결말을 가졌는지 이미 스포일러를 당하고 영화관으로 향한다고 한다. 이마저도 시간이 아까운 분초사회를 사는 이들은 쇼츠나 릴스를 통해 함축적인 내용을 미리 훑어보고 영화표 구매여부를 따진다고 한다. 80년대 초 태어나 MZ 막차인 나조차도 그렇다. 최근 로봇청소기가 필요해 포털에 ‘로청’을 검색하니 너무 많은 정보에 리뷰를 선택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저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없는 선택’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했던 리뷰 제목이 ‘떠 먹여주는 리뷰, 결정장애 종결’이었다.

지금 우리 편집기자들도 분초사회에 일조하고 있다.

헤드라인과 부제목을 정하면서 전달력 높은 두괄식 문장으로 제목을 뽑으려 진땀을 뺀다. 마감을 앞두고 국장의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이 가끔(?)있는데 대부분의 나무람이 편집기자에게 “기사의 핵심 내용을 제목 앞에 배치” 또 취재기자에 “왜 리드에 기사의 핵심이 빠졌냐”가 대부분인데 텍스트 가장 앞자락의 전달력을 중요시하는 기자들 특유의 논조에 대한 꾸지람을 듣는다. 이 또한 분초를 다투는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빠르게 기사를 전달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고군분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시대마다 시간의 개념은 더욱더 오밀조밀해졌다. 사주팔자나 점술에 쓰이는 ‘십이시’는 하루를 열둘로 나눠 2시간씩 자축인묘진사…순으로 표기했다. 농경사회에는 밭 갈고 참 먹고 집에 갔으니깐 뭐…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분초사회는 아침에 차를 타고 출근하며 신호대기 시간에 화장을 고치고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를 사 통근과 동시에 식사를 해결한다. 이처럼 잉여시간이 생기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고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경험경제 시대에 도태된다고 여겨진다. 이와 같은 위협의식은 ‘빨리빨리’대한민국의 압축성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와 산업 성장은 어느 시기에나 정점을 맞이한다. 그 최고점은 하향곡선을 그릴 수도 평행곡선을 그릴 수도 있겠다. 이러한 두 곡선은 퇴보나 빈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시점은 다음 세대 우리 아이들에게 성장 가능성을 남겨준다. 꼭 우리가 다 완성할 필요는 없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내년 2024년 핵심키워드로 ‘분초사회’를 제시했다. 분초사회를 다루는 글의 말미에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여백이 필요하다”라고 책은 조언한다. 빠른 속도의 그늘로 “사색하고 자신을 지켜보는 시간을 잃어간다”라고 글을 닫는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영화를 보러 가는 3가지 시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설렘을 가지고 극장에 가는 시간. 극장 안에서 시네마 천국을 만끽하는 시간. 돌아가는 길, 함께 본 이와 담론하는 시간. 이처럼 영화를 보는 3가지 시간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마치 유에스비(USB)를 중추에 꽂는 것처럼 영화의 결말을 주입한다면 사색하고 담론하는 여백의 시간이 바싹 말라갈 것 같다.

매표소 팝콘의 향기.

큰 스크린이 압도하는 두근거림.

“왜 때문에 이따위 영화를 골랐냐” 친구와 소소한 다툼.

연말엔 우리 삶의 여백을 더 늘려보는 건 어떨까.

김명준 weege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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