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 소식을 들으면서 오래전 읽었던 책 한권을 떠올리게 된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철학자 가이 머치(Guy Murchie)는 그의 저서 ‘The World Aloft’에서 인류의 우주선 발사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영향을 줬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적었다.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됐고, 이로 인해 안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안경산업이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망원경이 발명됐으며, 이것이 천체망원경으로 이어지면서 천문우주과학이 발달하고 결국 인류가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주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게 됐다는 논리이다.

이처럼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훗날 다른 분야에서 큰 도움을 준 사례는 또 있는데, 바로 프랑스 화학자 라브와지에의 연소이론이 소방에 미친 영향이다. 그는 ‘현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업적들을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소이론이다. 초등학생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화재안전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 이론이다. 가연물, 산소, 점화원(열)이 만나면 불이 나고, 반대로 제거·질식·냉각으로 불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가 불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기에 소방에서 과학적,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고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관련 장비와 기술의 발전에 있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화재 진압이나 예방을 고려하여 연소이론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후반에도 물질에 불이 붙는 것은 플로지스톤이라는 상상의 물질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연소이론은 이에 의구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연구해 얻은 결과물이었고 이를 통해 연소에 영향을 주는 산소를 발견, 명명까지 한 것이다. 심지어 그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이기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방과 관련된 어떠한 행적도 남기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연소이론이 단순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라브와지에의 학구적 열정이 담겨 있다. 우리가 불을 이해하고 화재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지혜도 담고 있다. 우리가 배웠던 라브와지에의 연소이론과 소화이론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그 의미를 이해한다면 깊어가는 이 겨울을 화재로부터 좀 더 안전하게 보내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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