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화 한림대 국제학부 겸임교수
▲ 이종화 한림대 국제학부 겸임교수

12월 초부터 두달 예정으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체류하고 있다. 8년 전부터 즐기는 탱고를 즐기려고 왔다.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지만 탱고에 푹 빠져서 주변 여행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관광조차도 못 해 보았다. 비행기를 2번에서 3번 갈아타야 하고, 30시간 이상 비행기에 갇혀 있어야 도착할 수 있는 지구 반대쪽에 있는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래서 사람들이 묻는다, ‘그 먼 곳까지 뭐 하러 갔냐?’고, 나는 답한다 ‘그냥 좋으니까’

직접 경험한 아르헨티나의 현실은 이렇다. 5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 1달러에 100페소를 환전했다. 2023년 12월 두번째 방문에서는 340페소에 환전했는데, 두달 후에는 이미 400페소가 되었고, 지금은 1000페소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싸다. 농·축산업이 주요 산업이라 과일과 소고기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약한 불과 연기로 3시간 정도 익히는 ‘아사도’라고 불리는 소고기 요리에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자부심이 들어가 있다. 포도주도 대표적으로 ‘말벡’이 유명하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좋은 포도주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느 곳을 가더라도 택시비가 5000원을 넘기지 않는다. 단돈 2000원이면 맛있는 체리를 봉지에 가득 담을 수도 있다. 탱고를 출 수 있는 밀롱가 입장료의 경우 우리나라는 1만 2000원 정도 하는데, 여기서는 3000원이면 된다.

반대로 페소가 싸니 수입 공산품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와는 반대로 수출세를 부과하는 특이한 나라다. 또한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당장 오늘이 제일 싸기 때문에 슈퍼마켓에는 항상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만약 5년 사이 환율이 달러당 1300원에서 13만원이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도 잠시 해본다.

이런 경제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필자는 아직 외부인이라서 전체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냥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에 적응이 되어 그냥 일상이 된 듯이 살아간다. 여전히 슈퍼마켓과 백화점에는 사람들이 넘치고, 식당은 밤늦게(여기는 보통 저녁식사가 9시에 시작한다)까지 떠들썩거림으로 손님이 넘친다. 환율로 이익을 보는 외국인 관광객(필자 포함)은 저렴한 물가를 즐길 수 있고, 탱고를 즐기는 많은 외국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고 있다. 외부에서 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국민이지만, 속에서 같이 살아보면 낙천적인 성향이 강해서인지 위기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여전히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물론 경제난으로 범죄가 증가하는 불안감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막상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하는 짓이 크게 별로 없다. 긴 비행 여정으로 잠이 필요했고, 일어나면 먹고, 졸리면 다시 자고, 깨면 운동하러 가고, 피곤하면 다시 자고, 일어나면 탱고를 추러 간다. 새벽 5시까지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은 탱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상이다. 그래서 시차를 느낄 여유가 없다.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피곤하면 자고, 쉬면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서 일주일 만에 오토바이를 탄 놈에게 휴대전화를 날치기 당해서 곤혹스러웠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다 해결된다. 휴대폰 분실로 느껴보는 디지털과의 임시적인 이별도 즐길만하다.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자고, 먹고, 운동하고, 자고, 춤추고 하는 일상의 반복이 대단한 행복이지 않을까? 항상 바쁘다는 사람들 속에서 거대하고 유명한 그 무엇인가를 봐야 하는 여행, 그리고 대단한 짓을 해야만 하는 특별함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지구 반대편에서 느껴본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달라 따뜻한 여름 날씨는 덤으로 느끼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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