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연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뉴스는 11월말의 자승스님 입적과 12월말의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이었다. 두 분의 선영은 필자가 사는 춘천 교외에 있어서 소개한다.
 

필자는 불교에 문외한이고 자승에 대한 시비공과를 운운할 입장과 식견도 없음을 밝혀둔다.
 

자승은 1972년 18세의 나이에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 밑에서 불법을 배웠다.
 

자승은 조계종에 관하여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고 종단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총무원 재무부장, 총무부장을 지냈으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4선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 10월 22일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전체 317표 중 290표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로 당선된다. 이후 2013년에 재선되어 2017년에 8년간의 재선 임기를 마쳤다. 자승의 정치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자승은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종단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동국대 건학위원회 총재, 봉은사 회주, “상월결사”회주와 조계종 입법기관인 불교광장 총재, 은정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러니 자승은 사판승으로 “종단의 최고 실력자”이고. 영향력은 “종정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23년 봄에는 대중들을 인솔하여 부처님의 7대 성지, 1167km의 43일간의 인도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불교는 다시 사대부중 속으로 대장정을 떠날 것이라며 불법전도의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필자는 지난 해 8월, 자승이 태어난 가일리를 찾아갔다. 마을은 춘천 도심에서 북쪽으로 30여㎞ 떨어져 있다. 화천으로 가는 5번 국도를 따라가다 춘천댐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고탄리와 송암리를 지나 250고지의 재를 넘으면 마을이 나타난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협착한 마을은 가구 수도 드물다.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마침 여러 분이 계셨다. 자승스님의 선영을 물어보니, 연세가 높은 어른이 안내하겠다며 나섰다. 회관에서 1.5㎞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북한강 상류와 인접한 과수원이 있고, 그 상단에 자승의 선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승스님 조부모 묘소. 춘천시 가일리.

자승스님 조부모 묘소. 춘천시 가일리.


춘천댐 담수로 생긴 북한강 상류의 풍광이 일품이다. 조부모님은 1980년대 후반에 별세했으니, 자승이 불문(佛門)에 들어가고도 십 수 년을 더 사셨다.


조부모 묘소는 하단의 모친 묘소의 여기(餘氣)에 자리하지만 16회절 대명당에 모셨다. 묘소 옆은 21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진경스님으로, 소문을 듣고 내춘(來春)하셨기에 필자가 안내하였다.(첫 간산에는 폭우로 사진이 엉망이었다. 사진은 진경스님과 간산 당시 찍은 것임)
 

자승스님 모친 묘소.

자승스님 모친 묘소.
 

모친은 스님이 6살에 세상을 떠나셨다. 첫 간산 때 동네 어르신과 나눴던 말이다. “스님을 어릴 적부터 봐왔어. 얼굴이 잘 생기고 기운도 좋고 일도 잘했지. 그래서 훗날 큰 인물이 되리라 생각했네. 불쌍한 것은 엄마가 너무 일찍 돌아갔어, 막내딸의 돌도 보지도 못하고”.”모친을 일찍 여윈 것은 안된 일이나, 대명당에는 모셔서 천하의 자승이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뭐하나 자승의 손위 누나도 이태 전에 돌아갔어”. 순간 필자의 머리가 띵해졌다. “근데 부친 묘소는 어디에 있지요”. “부친은 자승이 스님이 된 이후에 돌아갔는데, 자승이 다른 곳에 모셨다고 들었네”
 

맥로도. 맥로는 남쪽인 전면에서 진입하는데, 맥로는 춘천은 물론 홍천을 경유해 오는 측량키 어려울 정도의 장원(長遠)한 행도를 하였다. 절묘한 것은 묘소 앞에 청색으로 표시한 길흉경계선을 넘어 핵심 혈처인 40회절 명당에 모셨다. 그래서 뒤(위)에 모신 조부모 묘소도 모두 명당이다. BTS의 방시혁 조부모나 중국의 전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부모 묘소보다 역량이 더 좋다.
 

이후 필자는 자승의 속가 동기에게 부친 묘소를 물어봤으나,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11월 하순, 야심한 시각에 핸드폰에서 진경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게, 자승의 선영이 대명당인데, 어찌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선영이 아무리 대명당이어도, 흉지에 모신 묘소가 있으면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명당은 그에 상응하는 좋은 기운을 발현하지만, 흉지의 기운을 상쇄하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자승의 부친 묘소를 찾아서 입적 원인을 풍수적으로 규명해 보시게”


스님이 입적한 이후, 다시 가일리 마을을 찾아 물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스님이 입적한 칠장사를 찾아갔다.
 

안성 칠장사. 혜조국사비 뒤의 요사채 자리. 화재이후 정리한 모습.

안성 칠장사. 혜조국사비 뒤의 요사채 자리. 화재이후 정리한 모습.


칠장사는 천년고찰로 대웅전은 대명당에 자리하지만, 요사채는 그 대명당에 상응하는 대흉지였다. 스님의 홀연한 입적은 필자에게 깊은 허망함과 아쉬움을 남겼다.


2022년 5월, 한동훈이 법무장관에 취임하자 필자에게 한동훈의 선영을 문의 하는 풍수인이 적지 않았다. 한동훈의 부친이 춘천 출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동훈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모두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남다른 관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기실 그의 경력도 간단한 것이 아니였다. 22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연수원을 수료하고 공군장교로 전역했다. 그의 경력을 간단히 살펴보자.


2001년, 서울지방 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대검중수부 재직시 주식을 부당거래한 SK회장을 구속, 대선자금 제공혐의로 한나라당 대표를 구속.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과정을 이수.

2006년,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현대차 회장을 구속.

2007년,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현직 국세청장을 구속.
2009년 ~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재직.

2015년 5월,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동국제강 회장을 구속, 7월에는 증여세 등을 탈루한 신원그룹 회장을 구속. 9월에는 가격을 담합한 일본업체를 기소했는데, 한국 검찰이 국제 카르텔 사건을 기소한 것은 처음이었다.

2016년, 박영수 특검팀에서 윤석열 팀장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고,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

2017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로 윤석열 지검장을 보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밝히고 구속.


한동훈은 위와 같은 굵직한 수사에 참여하여 “대기업 저승사자”라고 불렸고, 또한 윤석열과 함께 2명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켜 “조선제일검”이란 유명세도 붙었다.

2019년,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찰청 반부패 강력부장으로서 조국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한 이후인 2020년과 2002년에 부산고검으로,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2022년 5월 17일,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23년 12월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고 법무부장관직을 사퇴한다. 12월 26일, 국민의힘 온라인 전국위원회는 96.46%의 찬성률로 비대위원장을 임명을 의결시켰다.


필자는 한동훈이 국힘당 비대위원장에 취임한지 보름이 지난 시기에 그의 선영을 찾았다. 마당발 동창생의 인맥 덕분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조부모 묘소. 춘천시 안보리.
한동훈 비대위원장 조부모 묘소. 춘천시 안보리.

한동훈 비대위원장 조부모 묘소. 춘천시 안보리.
 

조부모 묘소를 발견한 것은 망외(望外)의 소득이었다. 부모의 묘소가 풍수감평에 가장 중요하지만, 선대 묘소를 함께 간산하면 종합적인 판단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조부는 1961년, 조모는 1998년에 졸했다. 조부모를 원래부터 이곳에 모셨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화장(火葬)하여 모신 듯하다. 후손들의 삶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한동훈 부친 묘소
한동훈 부친 묘소

한동훈 부친 묘소. 그는 춘천고 32회로 졸업하고 춘천시 후평동에서 AMK대표를 지냈다. 이후 AMK공장은 청주로 이전했다. 부친은 별다른 행적은 남기지 않았고 말년에는 춘천 교외에서 거주했다. 2004년 한동훈이 초임검사 시절에 별세했다.
 

맥로도. 전면에서 진입하는 맥로가 한동훈의 백부(伯父)묘소에 주혈을 맺었다.

한동훈 선영은 모두 명당에 자리한다. 한위원장이 총선을 잘 치러낼 것인지, 차기 대권도 가능할지. 풍수적 감평은 필자의 마음속에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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