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귀족들 사이에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모두를 압도하며 등장한다. 파리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그녀에게 보석상 샤를르 뵈머가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팔려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그러나 귀족들의 음모에 빠진 그녀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민중의 불만은 폭발하고 자코뱅 당의 공포 정치가 시작된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체포돼 공개재판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오는 2월 27일부터 서울 디큐브시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줄거리다. 이 작품의 배경은 1785년 부르봉 왕가의 말기를 상징하는 목걸이 스캔들이다. 왕비가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국왕 모르게 타인 명의로 구입하기를 원한다고 속여 대리구매를 유도한 후, 이를 가로챈 전형적인 사기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민중의 불신을 사지만, 재판을 통해 왕비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빵을 달라고 여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었다. 혁명세력들은 왕비가 이 말을 했다고 조작함으로써 왕실의 부패와 비리를 부풀려 혁명의 정당성을 얻으려고 했던 것. 물론 당시 국고는 파산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그녀의 사치 때문은 아니었다. 선대부터 이어진 향락과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한 탓이 더 컸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15살이 된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결혼했다. 왕비가 된 그녀는 이례적으로 빈민 구제와 농경생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순박하다는 평가까지 받는 그녀였지만,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말았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의 입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시 소환됐다. 여권 내 주도권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상황이어서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혼돈의 시대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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