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원작대로 만들길” 청원
춘천 출신 길승수 작가도 우려
“드라마 속 대립 실제론 불가능”
제작진 “역사 해치지 않아” 해명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이 강감찬의 목을 조르려고 하는 장면.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갈무리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이 강감찬의 목을 조르려고 하는 장면.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갈무리

춘천 출신 길승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원작과 다르게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최근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전개를 원작 스토리로 가기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에는 1000명이 넘는 시청자가 동의했다. 길승수 작가도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 할 수 있는 사람(현종)을 바보로 만들었다”며 우려 섞인 의견을 드러냈다.

드라마 전개를 둘러싼 논란은 양규 장군의 전사 이후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4일 방송된 18화에서 현종과 호족간의 갈등의 비현실적 전개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현종이 강감찬을 파직하고, 화를 삭이지 못해 갑작스럽게 낙마하는 장면 등에 대한 불만의 수위도 높았다.

이에 대해 길승수 작가는 최근 페이스북 등에 “드라마가 원작 내용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소신”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고려의 지방제도 개혁은 꾸준히 행해지다가, 현종 이전인 성종 때 거의 완비된다. 드라마와 같은 심각한 대립은 있을 수조차 없다”고 했다. 길 작가는 지난해 본지와 첫 단독 인터뷰에서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이 낙마하는 장면.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갈무리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이 낙마하는 장면.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갈무리

이외에도 강조의 삼수채 전투, 서경공방전, 곽주 탈환 장면 등 전쟁의 전반적 맥락을 상당 부분 생략하고 현종과 원정황후와의 대립 등 불필요한 부분이 많이 등장하고 개연성이 떨어져 아쉽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고려거란전쟁’ 제작진은 23일 작품 탄생기를 공개, “기록들이 조선시대보다 현저히 적은 고려 시대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사건들의 틈새를 이어줄 이야기가 필요했다”며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드라마 연출을 맡은 전우성 감독과 이정우 작가도 공식 입장을 냈다. 전 감독은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며 “‘고려 거란 전쟁’ 원작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소설 ‘고려 거란 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당시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이라며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원작 소설작가인)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다. 이후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우 작가도 “원작 소설을 검토했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신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이라며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했다.

길승수 작가는 바로 반박했다. 그는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문을 거절했다는 제작진 주장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겠다. 작가 교체 후 마치 위의 사람인양 페이퍼 작성을 지시했다. ‘그건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이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통합해서 작성한 고려사가 있으니, 보조작가에게 시키면 된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알려주겠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라고 썼다.

시청자들도 “원작 소설 안 따라가더라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내용만 충실히 보여줘도 충분했을텐데 왜 무리한 창작을 시도하셨나”, “풀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많은데 지금 궁중암투물로 소중한 4화를 날리셨네요”, “시청률을 떠나서 이 드라마는 정확하게 실패한 드라마”라는 등의 반응을 드라마 공식 게시판에 남겼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시청자들의 시선은 거란의 3∼6차 침입, 동여진 해적 토벌, 충신 하공진의 죽음 등을 어떻게 그려나갈지에 쏠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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