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플리. 국내외 ‘띵곡(명곡)’들 속 이야기와 가사를 통해 생각(Think)거리를 선물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나눕니다. 계절이나 사회 이슈 등에 맞는 다양한 곡을 선정, 음악에 얽힌 이야기나 가사 등과 함께 추천합니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장르와 시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최신 팝 음악부터 숨겨진 명곡까지 다양한 음악 메뉴를 내놓겠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와 흐름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입니다. 독자들과 함께하는 오프라인 청음회도 열 예정입니다. 띵플리 두번째는, 미국 기타리스트 로이 뷰캐넌으로 이어갑니다. 뛰어난 실력에 비해 상업적 성공을 크게 거두지는 못했지만 후대에 남긴 영향력만큼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수많은 이사를 거쳐도 남아있는 LP처럼…. 그의 음악을 소환하던 전영혁 DJ의 목소리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전영혁. 조용필로 대표되는 대중과 주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80년대의 또다른 상징. 전설적인 라디오 DJ이자 팝 칼럼니스트로 여전히 회자되는 전영혁은 수많은 청춘들을 ‘프로그레시브’라는 낯선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 속에서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인 이들도 많았다. 질식할 것 같은 80, 90년대를 함께 숨쉬며 버틴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1988년 8월 어느 날. KBS라디오 심야방송을 진행 중이었던 DJ 전영혁은 “로이 부캐넌이 목을 매고 자살했습니다”라고 덤덤히 알렸다. 구치소에서 자신의 셔츠를 의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복잡한 가정사와 약물중독은 설명이 필요없을 듯 싶다.

전영혁은 로이 뷰캐넌(Roy Buchanan)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그는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1986년 자신의 방송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그 해, 가장 많이 들은 몇 번째 곡이 되기도 했다.

전영혁은 국내판 앨범소개를 통해 이렇게 썼다. “로이의 고해성사 같은 독백으로 시작되는 불후의 명곡 ‘The Messiah Will Come Again’으로 받은 감동과 충격은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화 되어가고 있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며 멋대로 딩구는 휴지조각 처럼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 바로 그것이었다.”

로이는 출렁거리는 기타 리프와 함께 낮게 읊조린다.


“There was a town. It was a strange little town.

They called the world.

It was a lonely, lonely little town. Till one day a stranger appeared.

Their hearts rejoiced. And this sad little town was happy again.

But there were some that doubted. They disbelieved.

So they mocked him.

And the stranger, He went away.

And the sad little town

That was sad yesterday

It‘s a lot sadder today.

I walked in a lot of places

I never should have been

But I know that the Messiah

He will come again”

▲ 로이 뷰캐넌의 LP. 전영혁 칼럼니스트가 ‘휀더 텔리캐스터의 제왕 로이 부캐넌이 남긴 기타의 고해성사’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 수록곡 제목들과 함께 뒷면을 채우고 있다.
▲ 로이 뷰캐넌의 LP. 전영혁 칼럼니스트가 ‘휀더 텔리캐스터의 제왕 로이 부캐넌이 남긴 기타의 고해성사’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 수록곡 제목들과 함께 뒷면을 채우고 있다.

종교적인 내용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결국 고독과 소외를 극대화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곡이 1972년 만들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미국사회의 극심한 혼돈이 투영된 건 아닐까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어느 글에선가 이 곡이 게리 무어(Gary Moore)의 ‘Parisienne Walkways’와 비슷하다고들 하던데. 두 곡의 시차가 7년 정도이고 게리 무어가 로이에 대해 엄청난 존경심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슷하게 들렸으면 그것은 전적으로 게리 무어의 책임이다.

전영혁이 써내려간 앨범소개에는 세계3대 기타리스트 같은 당시에는 관심을 끌만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참고로 국내에 발매된 앨범은 1985년 성음에서 제작, 판매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를 우리는 흔히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지미 페이지라고 이야기한다. 3대 휀더맨은 에릭클립튼, 리치블랙모어, 로이부캐넌 이라고 평가한다. 게리무어, 에드워드 밴 헤일런, 잉위 맘스틴은 무서운 영파워 군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 로이 뷰캐넌의 LP. 수많은 이사들을 거치면서도 아직 집안에 남아 있다.
▲ 로이 뷰캐넌의 LP. 수많은 이사들을 거치면서도 아직 집안에 남아 있다.

휀더맨? 좀 낯설지 싶다. 일렉트릭 기타가 나온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결과 휀더 텔리캐스터(Fender Telecaster)와 깁슨-레스폴(Gibson Les Paul)이 나왔고 아마 로이는 이 휀더를 무척 잘 쳤던 모양이다. 좌우간 저 소개 덕에 잉위 맘스틴의 그 무서운 속주기타를 접하게 됐으니…(우리가 한국 3대 기타리스트 뭐 이렇게 얘기하면서 누구 누구 누구 얘기하던데 정작 3대 중 으뜸이라고 칭송받던 신대철이 “어느 순간 카피만 하는 것 같은 자신에게 회의가 들었다”고 한 고백이 훨씬 솔직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3대 얘기하면 당사자들도 좀 낯간지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로이의 LP판을 언제 구입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수많은 이사와 짐짝 속에서도 저 판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는 게 신기하다. 선거를 앞둔 이 혼돈의 시기, 부질없고 기약없는 일이지만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잔잔히 들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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