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일 남춘천중
▲ 이호일 남춘천중

유난히도 무더웠던 2023년, 그리고 가장 뜨거웠던 8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그 곳 한가운데 나도 12일 동안 함께 있었다. 조금은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 그 시간 그곳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 보고자 한다.

난 태어나서부터 캠핑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따라 밖에서 하는 야영 활동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고 신기하고 그랬다. 내가 사는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면서 여행하는 것도 텐트에서의 잠자리도 좋았다. 이런 영향 속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춘천 호반지역대에서 스카우트 활동을 시작했다. 뉴질랜드에서 2년간 생활하는 기간에도 파파모아 스카우트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한국과 다른 흥미로운 활동들이 많았다. 현재 나는 춘천 호반지역대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세계 잼버리대회는 1920년 영국에서 1회 대회가 있었고, 4년마다 세계 스카우트들이 모이는 청소년 올림픽 같은 그런 국제행사다. 세계 잼버리는 스카우트 생활 동안 대원으로서는 단 한번만 참석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다. 물론 나는 이번 개최국 대원이기에 중학교 1학년 임에도 참가하는 혜택을 누렸다. 그래서 2027년 폴란드 대회에도 참석할 자격이 된다. 즉 2번의 세계대회에 대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행운아’이다. 세계대회의 개최국은 엄청난 경쟁을 통해 선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1991년에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했고, 이번 전라북도 새만금이 두번째이다.

이번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에는 172개국 청소년과 지도자 5만명, 운영요원과 자원봉사자 1만명 등이 참여한 최대규모로, 코로나-19로 인해 1년 늦게 개최되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하던 스카우트들이 모이는 만큼 문화도 환경도 기후도 식사도 낯설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특히 새만금은 바다를 매립해 만든 땅으로 숲과 나무, 강과 계곡 같은 쾌적한 야영 환경이 아니다. 시설도 대부분 임시시설로 부족하고 여름 폭염에 가장 불리한 장소였기에 어쩌면 야영하는데 최악의 조건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8월 1일 춘천에서 호반지역대 대장님들과 대원들이 버스에 올랐다. 시작 전부터 폭염 이야기, 잼버리장의 시설 미비와 준비 부족 등의 문제에 대해서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 이야기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반 설렘반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스카우트대회에는 중학생 미만은 참석할 수 없기때문에 나를 비롯한 중학교 1학년들이 막내였다. 그러나 늘 함께 활동하는 대장님들과 형, 누나들이 있고, 다른 나라에서 오는 스카우트들과 교류할 생각을 하니 너무 신나 있었다.

잼버리대회는 대원 9명과 대장님 1명이 patrol(반) 이루고. 이들 4개 반이 모여 unit(대)을 이룬다. 40-60여개 unit들이 모여서 서브 캠프를 이루고 이번 대회는 이런 서브 캠프가 18개나 운영되었다. 각각의 서브 캠프에는 세계 여러 나라 대원들이 다양하게 섞여져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 잼버리장 곳곳에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또 대원들은 다른 unit 방문해 함께 놀고 뺏지도 교환하고 교류한다. 식사는 10명의 patrol 단위로 직접 식재료를 받아와서 만들어 먹는다. 세계 잼버리대회의 기본적인 운영 방식이다.

우리는 조선허브-설악분단-unit6 였다. 새만금에 도착하자마자부터 더웠다. 그냥 마구마구 더웠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등록을 하고 나서야 양영지로 갈수 있었다. 2인 1조로 팔레트를 깔고 텐트를 쳤다. 난 고등학교 3학년 형과 같은 텐트에 배정되었다. 저녁은 삼각김밥과 샌드위치가 나왔지만 먹을 힘도 없었다. 더위에 지쳐버렸다. 대장님들은 우리들을 위해 더 열심히 움직이셨지만 텐트밖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잠을 자야했다.

자고 일어났지만 안 잔 것처럼 피곤했다. 아침은 식재료 담당이 받아온 재료로 요리해서 먹고 점심 도시락도 쌌다. 나는 평소에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엄마, 아빠와 함께 이것저것 만들었던 경험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잼버리가 끝나고 대장님께서 호일이는 다음에도 꼭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우리 unit의 요리 담당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환영식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매우 시끌벅적 했다. 여러사람들이 와서 잼버리의 시작을 알렸다. 생존 전문가인 베어 그릴스, 명예 총재인 대통령도 와서 축하해 주었다. 한류문화 공연도 있었지만 많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기간동안 영지내에서는 산악 자전거, K-pop 댄스 배우기, 달고나 만들기, 전통놀이 체험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해보고 싶은 체험들이 많았지만 다 해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탈리아 영지에 방문해서 이탈리아 대원들이 만들어주는 스파게티를 먹고, 벨기에 영지에서는 와플을 먹었다. 일본 전통 떡도 먹었다.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뱃지도 교환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서로 SNS를 팔로우하고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저녁 공연에서 친해진 독일 친구는 메시지를 보내 티셔츠를 교환하자고 제안해 주어서 다음날 만나 교환했다. 독일의 파란색 티셔츠가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집으로 돌아간 친구가 생겼다.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하루에 한번 화장실에서 어찌어찌 해결해 나갔다. 더위는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땀띠로 고생하는 대원들도 많았다. 온몸에 땀띠가 나고 아토피가 올라와 부모님이 오셔서 외부 병원에 다녀온 형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병원은 더워서 걸어가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가야 에어컨 바람도 쐬고 연고도 바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미리 챙겨준 비상약 들이 있었지만 형들 따라서 한번씩 다녀왔다. 그러다 냉방버스가 들어왔다.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자유 시간이 되면 형들이랑 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고 하는 시간을 보냈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우리의 스카우트 활동에는 큰 난관은 없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들은 그런 문제에 크게 개의치 않고 세계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외부의 과도한 걱정 때문에 준비된 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낮 동안에는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이 되면 우리만의 파티가 시작된다. 각자 자기의 끼를 뽐내며 노래하고, 춤추고 한데 어루러져 잼버리를 즐겼다.

그런데 태풍이 닥쳐오고 있었고, 모든 대원에게 철수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쉬움 속에 수 만명의 대원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호텔로 연수원으로 기숙사로 각자 캠프를 옮겼다. 이제 다른 나라 대원들을 만나 교류하기 힘들어졌다. 다시는 만날수 없다는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나마 위안은 마지막날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K-POP 콘서트를 기회로 다 함께 모인다는 것이었다.

이동 전날부터 짐을 정리하고 이동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용인으로 이동해 교회 강당에서 피난민들처럼 요가 매트 하나씩 깔고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잤다. 샤워도 물론 할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 양치만 했다. 다음날은 다시 짐을 쌌다. 양평으로의 코바코 연수원으로 두 번째 이동이었다. 여기는 천국이었다. 우리를 위해 환영의 풍선 장식도 해주셨다. 침대도 있고, 시원한 에어컨도 나왔다. 맛있는 식사와 간식도 제공해 주시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체험과 공연도 보여주셨다.

많은분이 도와주셔서 환경은 좋았지만, 다른 나라 대원들과 함께 할 수 없으니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런 대원들을 보니 나도 집으로 돌아갈까? 집에 가서 시~원하게 씻고 편안한 내방 침대에 누워서 꿀잠이나 잘까?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부모님도 힘들면 언제든 데리러 오겠다고…대기하고 계신다고… 그러셨는데…그러나 힘들게 버텨온 날들이 아닌가? 끝까지 해내서 유종의 미? 그런거… 나도 맛보고 싶어졌다. 아이돌인 아이브를 좋아해서 K-POP 공연도 나를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K-POP 공연과 폐영식이 끝났다. 다음날 춘천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마중나와 계셨고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엄마 냄새가 좋다. 아빠 냄새도 좋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정말 개운하고 너무너무 시원하다. 그리고 내 침대로 뛰어들었다. 역시 집이 최고다. 이렇게 12일간의 시간이 끝났다.

아직도 난 뜨거웠던 8월을 가끔 기억한다. 잼버리 기간 독일 친구와 바꾼 하늘색 티셔츠를 지금도 즐겨 입는다. 그때 만나고 웃고 놀았던 친구들아. 그곳에서 잘살고 있니.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거야. 너도 그러겠지? 2027년 폴란드에서 다시 만나서 활동하고 싶다. 난 그때를 위해 지금도 스카우트 대원으로 열심히 활동한다. “Scout friends, let’s meet again in 26th World Scout Jamboree Poland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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