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준 기자
▲ 박희준 기자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죠
삼키지 못해도 힘껏 고개 끄덕여요
긍정적 태도를 기르고 있습니다

반질반질 검은 정장 걸치고
우두머리가 가리킨 곳으로 날갯짓해요
무리 없이 무리에 섞이고 싶거든요

입꼬리 올라간 사진과 소속이 쓰인 이름
같은 모양의 사원증이 목을 조여와요
공손하게 허리 굽혀도 속내는 토하지 않을게요

같은 강에서 사냥하고 같은 곳에 똥을 싸도
같은 텃새가 될 수는 없으니까
굴러온 돌은 어딘가 의심스럽죠

애써 잡은 물고기 온전히 바치면
우리가 될까요 질문은 꿀꺽 삼키고
강물에 비친 당신 표정 흉내 내봐요

목숨 건 비행은 고달프죠
떠나고 싶은 본능은 시커먼 강물에 버리고
당연한 풍경처럼 눈치껏 머물게요
당신의 하늘을 조금만 나눠주실래요

- 나래, 「가마우지 신입 사원」,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 2023, 달아실


10여 년 전, 나는 신입 사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누구나 직장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 철은 없어도 알거 다 안다고 자부했는데, 분명 사원증을 ‘낭낭하게’ 맸는데, 거꾸로 매달려 있는 기분을 당신도 느껴봤을 것이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라고 했던가. “입꼬리 올라간 사진”을 목에 걸고 오늘도 묵묵히 출근하는 ‘가마우지’들. ‘가족 같은’ 회사라고 목청 높이던 선배들 사이로 쭈뼛대던 20대를 지나 어느새 10여 년이 흘렀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 “힘껏 고개를 끄덕여”봐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세 번 옮겼는데도 적응이 안 되는 건 기분 탓일까. “무리 없이 무리에 섞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매번 나는 다시 뻣뻣해지고, 입꼬리 올리며 다시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한다. “같은 강에서 사냥하고 같은 곳에 똥을 싸도” 무리 밖에서 타이밍을 재며 서성일 때도, 나는 “굴러온 돌”일 뿐, “같은 텃새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오래전 입사 동기가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농담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뼈 빠지게’ 일하더니 그 ‘뼈’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지금은 모두들 제 살길 찾아 떠났지만 그들에게 지금 뼈를 추스를 시간은 남아 있는 걸까.

어찌보면 우리는 모두 세상에 “굴러온 돌”이다. 굴러왔기에 “애써 잡은 물고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고기야 또 잡으면 그만이니까. 다만 “목숨 건 비행” 끝에 함께 쉬어갈 바위 언저리 어딘가 ‘함께 쉴 곳’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히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더 단단히 땅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다져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질반질 검은 정장 걸치고” 길들여지지 않은 딱딱한 구두처럼 뻣뻣한 자세로 앉아있던 청년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떠나고 싶은 본능”은 감추고 “강물에 비친 당신 표정”을 따라 하기 바쁠까. 오늘도 한 평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책상 앞에 앉아 사투를 벌이는 동료들을 본다. 각자의 둥지에서 묵묵히 쌓아올린 “하늘”을, 함께 날아오를 “하늘”을 함께 공유하면 어떨까. 가마우지여, 이제 날아오를 시간이다.
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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