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은 조막만 한 일곱 살 계집아이가 친척들과의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시작된다.

“엄마 나는 왜 반찬 많은 상에서 밥 먹으면 안 돼?”

어린아이 눈에 비친 ‘반찬 많은 상’은 집안 남성들을 위한 것으로, 그 상은 여성들이 앉을 ‘반찬 없는 상’보다 먼저 차려진다. 당연히 음식은 더 따뜻했고 풍성했으며 정갈하게 담겨 내어졌다.

그 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하나, 남자일 것. ‘남자가 아닌 자’들의 비좁은 상 위에는 접시 대신 바닥을 드러낸 반찬통, 건더기가 부실한 국그릇, 찬밥과 더운밥이 혼재한 밥그릇이 규칙 없이 나뒹굴었다.

상이 차려지는 위치는 또 어떠했던가. 남성들의 상은 비교적 넓은 안방에, 여성들의 상은 주방에 배치된다. 주방에 앉은 여성들은 기계적으로 숟가락질을 하며 안방 남성들의 식사에 부족함이 없는지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곳에 있던 누구도 그것이 남존여비 사상에 근거한 불합리라 생각지 못했다. 누대에 거쳐 이어온 고집스러운 관습이겠거니 여겼다. 큰상에서 따뜻한 밥 먹겠다며 떼를 쓰던 꼬마의 당돌함 역시 그것이 여성의 권리 찾기라던가, 더 나아가 남녀평등의 갈증에서 기인한 행동은 아니었다. 더 따뜻하고 더 풍성한 그 상의 일원이 되지 못함에 분개했을 뿐.

그 꼬마는 어떻게 됐을까. 식사를 거부하며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대문을 빠져나와 두 시간 남짓 논두렁을 배회했고, 집으로 돌아가 늦은 아침을 먹었다. 꼬마의 부재는 아랑곳없이 친척들의 식사는 이어졌다. 어쩌면 남성들이 둘러앉은 ‘반찬 많은 상’에 이 꼬마의 되바라진 도발이 숭늉과 함께 후식으로 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1990년 여름, 철원 한 시골 마을의 살풍경이다. 오래된 이야기이고, 지금은 사라진 모습이다. 30여 년이 흘러 2024년의 설이 다가온다. 벌써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가 떠올라 침샘이 부푼다. 여성들의 명절 노동은 풍요가 돼 설 밥상을 채울 것이다. 여자만 분주한 명절이 되지 않길 기대하는 건 너무 진부한 바람일까.

묻고 싶다. ‘당신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나요?’ 안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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