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작과 더불어 경천동지의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야당 대표의 목숨을 노린 살인 사건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범인은 “이 대표를 죽이려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가 사용한 칼은 사진만 봐도 소름이 돋는 예리하게 연마한 것이다. 필자가 어릴 적에 들었던 자유당 시절의 무법천지로 돌아간 느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파시즘의 전율을 느끼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테러사건 이후 후속 보도가 이어지고 필자의 머릿속은 이 대표의 선영이 오버랩되었다. 이재명 선영을 다시 찾았다.

이 대표의 선영은 봉화 관창리와 안동 도촌리 두 곳에 나뉘어져 있다. 관창리에는 고조, 증조 그리고 부모님 묘소가 있고, 도촌리에는 조부모 묘소가 있다.

관창리에서 도촌리는 직선거리로는 12㎞에 불과하나 차로 이동해도 굽이굽이 돌아 50여 분을 가야하는 두메산골이다.

먼저 관창리를 찾아갔다.

오마교(五馬橋) 우측에는 청량산이 보인다.

명호초등학교 분교(현재는 폐교) 터가 있는 마을에서 오마교를 건너서 450고지 이상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과나무 과수원 등의 농지가 있고 그 중간에 이 대표의 선영이 있다.
 

▲ 고조부 묘소
▲ 고조부 묘소

고조 묘소 후경. 백호방은 증조 묘소

고조 묘소 앞의 불꽃을 닮은 청량산을 이재명의 성정(性情)에 비교하기도 하고, 이재명의 현달을 추동해 주었다고 한다. 풍수전적(典籍)에도 조안산(朝案山)과 용호사(龍虎砂)의 형태와 미추(美醜)가 후손들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많은 현장을 간산해 보니 이러한 주장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하물며 고조 묘소가 5세손인 이 대표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은 거의 없다는 판단이다. (조혼이 만연했던 조선시대와는 풍수적 해석과 적용을 달리해야 한다).

필자의 맥로이론에 의하면 고조 묘소는 맥로에 걸렸고, 백호방의 증조 묘소도 맥로의 면배(面背)의 배(背)에 해당하는 흉지이다. 특히 고조 묘소는 묘역의 주혈인 15회절 명당에 상응하는 흉지이다. 양대 4분을 이런 흉지에 모시면 후손들은 삶은 신산간난(辛酸艱難)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의 조부 대(代)에 이르러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으며 부친 대에는 완전히 영락(零落)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증조부 묘소. 상석을 단정하게 갖춘 것이 이때까지는 집안형편이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대표의 부친 이경희(1931 ~ 1986년)와 모친 구호명 (1931 ~ 2020년) 합장 묘.

증조 묘소 하단에 자리한다. 필자가 이 대표의 선영을 처음 간산한 것은 2017년으로, 그가 성남시장으로 대권도전을 위한 당내경선에 참여했을 때이다. 당시는 모친이 생존해 계셨다.

이재명의 부친은 대학 중퇴 학력으로 순경, 교사, 탄광 관리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다. 주변 사람의 입사지원서나 신원보증서를 대신 써주는 등의 소위 유식분자였다. 그랬던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성남 상대원으로 떠났다. 타향에서 청소부를 하고 폐휴지를 주으며 온갖 고생과 좌절을 경험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견디어 냈으리라.

1986년 10월, 아들 이재명이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 한 달 뒤에 위암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1)에 부친, (2)에 모친을 모셨다.

이재명과 형이 각기 사법고시와 공인회계사에 합격한 것은 그들의 총명함에 기인하지만, 집안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부친을 이곳에 모신 이후의 일일 것이다. 게다가 모친까지 합장으로 모시니 묘소의 풍수파워는 배가(倍加)되었다.

테러사건에서 이 대표의 목숨을 구한 것은 와이셔츠라는 말이 있지만, 부모님 묫바람 덕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재명은 어머니를 “나의 하늘”이라고 말해왔다. “어머님은 고된 밭일에 약장사까지 하면서 힘겨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일곱 남매를 키웠다, 공장에서 프레스 사고로 비틀어진 저의 왼팔을 보고, 야학을 하던 저를 보고 말없이 흘린 어머니의 눈물, 그런데 저는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조부모 묘소. 안동 도촌리.

이재명이 태어난 도촌리 지통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 대표의 초등학교 선배를 만나서 조부모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했던 말이다. “왜소한 체구에 늘 코를 훌쩍이던 코찔찔이였지, 그런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상대가 덩치가 크건 형들이건 끝까지 덤비는 악발이였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재명의 성정은 천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소는 면배의 배(背)에 해당하는 흉지인데, 맥로가 당처(묘소)를 지나가니 더욱 흉하다. 선대 묘소중 최악의 흉지이다.

풍객인 필자는 이런 묘소를 보면, 그 후손들의 겪었을 고생스런 세상살이가 스크린처럼 눈앞을 스친다.

@ 이재명의 의 일독을 권한다.

그의 나이 열여섯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의 10여 년간, 그의 삶에서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록이다. 페이지마다 서려있는 지독한 고생과 서러움은 읽는 사람의 가슴도 시리게 하지만, 그러한 삶도 선영풍수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할 때, 이낙연의 열렬 지자가가 승패여부를 여러차례 물어왔다. 필자의 답변이었다. “두 분 선영의 풍수파워 총량은 거의 대등하다, 다만, 본인에게 풍수적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부모님 묘소를 이낙연은 흉지로 이장했고, 이재명은 명당에 모셨다. 이낙연은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 이재명은 대권이 가능할까. 부모님을 명당에 모셨다고 하나, 지금의 풍수파워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물론, 이 대표보다 선영 풍수가 약한 사람이 경쟁자가 되면 승리도 가능하겠지만). 게다가 이 대표는 흉지에 모신 조상님들의 묘소가 너무 많다.

@ 감히 조언하자면, 흉지에 모신 조상님들을 길지로 옮겨야한다.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을 좋게 할 것이고 후대들의 순탄한 삶을 위해서도 그렇다.

대명당은 도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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