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보름달 아래 등불과 관솔불을 요란하게 밝히고 수백, 수천의 군중이 거대한 줄을 당기며 힘을 쓴다. ‘으쌰, 으쌰∼’. 우레 같은 함성과 함께 징을 치는 타징 소리가 지축을 뒤흔든다. 때는 한밤중, 자시(子時)를 가리키지만, 용호상박 대결과 놀이의 흥에 취한 남녀노소는 지칠 줄 모른다.

1934년 일제에 의해 중단될 때까지 야간에 행해지던 ‘삼척 기줄다리기(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의 축제 현장 모습을 옛 고증 자료를 토대로 그려보니 대체로 이러했다. ‘대동(大同) 놀이의 백미’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줄다리기는 매년 정월대보름을 맞아 삼척지역에서 거대한 판을 펼치는 대표적인 전통 민속놀이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집에도 정월에 부락 대항으로 치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래(古來)로 전해지는 우리 민속놀이를 살펴보면, 정월대보름에는 협동과 단결을 중시하는 대동희(大同戱)가 유난히 많았다. 석전(石戰)과 횃불싸움(火戰), 차전(車戰)놀이 등이 모두 그렇다.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를 맞아 마을 사람들의 협력을 북돋는 농경문화의 소산이다. 그중에서도 줄다리기는 양 가닥 긴 줄을 다수 군중이 힘과 기술을 더해 겨룬다는 점에서 합심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하다.

삼척의 줄다리기는 엮어서 뻗어나간 여러갈래 줄 모양이 바다 ‘게’를 닮았다고 해 토속어인 ‘기줄’로 불렸다. 1662년에 삼척부사로 재임한 허목(許穆·1595∼1682년) 선생 때 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의 뿌리가 족히 4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보름 아침부터 여러 마을에서 가져온 줄을 엮으면서 농악과 지신밟기 등의 연희를 즐기다가 보름달이 중천에 걸렸을 때 겨루기 본 마당이 펼쳐졌다고 하니 먼 옛날, 그것도 한겨울 밤에 이런 축제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그 기줄다리기를 옛 모습을 본떠 야간에 재현하는 행사가 최근 삼척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열렸다. 횃불 아래 시민·관광객들이 한데 어울려 줄을 당기고,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향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줄다리기의 원형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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