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관동팔경 시대를 새롭게
구상해 보면 어떨까
‘육룡이 나르샤’처럼 동해안에
예맥국과 실직국, 우산국
로드를 만들어도 좋겠다

▲ 이종덕 문화플랫폼 봄아 대표
▲ 이종덕 문화플랫폼 봄아 대표

고대국가 신라에는 신이(神異)한 3대 보물이 있었다. 시조 박혁거세의 신물로 치유의 자인 금척(金尺), 신문왕의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피리 만파식적, 선덕왕의 불꽃이 이는 구슬 화주(火珠)가 그것이었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신물도 하늘이 내렸다는 쇠사슬 갑옷(鎖甲·쇄갑), 예리한 창인 섬모(矛)로 요동성 사당에 모셔져 있어 나라에 환난이 있을 때 제를 올렸다고 한다. 드라마 ‘주몽’에서는 이것을 살짝 판타지화 하여 다물활, 철갑옷, 청동경의 세가지로 표현했다. 영화 ‘전우치’에서 선인들이 피리를 불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도 신라의 3보 중 하나인 만파식적을 빌려온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바다 용왕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는데 왕이 이를 얻어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근심, 걱정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이 전설 같은 스토리를 담은 피리 두자루가 소장되어 있다. 우리는 역사 저편에서 콘텐츠를 건져 올려 우리 시대 스토리로 다시 사용하기를 반복한다. 중생대 공룡이 ‘쥐라기공원’으로 재탄생하듯이, 해리포터가 영국경제 상징이 되듯이 말이다. 실제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가면 마법학교로 가는 9와 3/4 승강장 벽에 세계 각국 어린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동해안의 삼척에 가면 오금잠(烏金簪)이라고 하는 신라 공주의 신물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기를 ‘사람들이 비녀를 작은 함에 담아 관아 동쪽 나무 밑에 묻어두었다가 단옷날이면 모셔 와 제물을 갖추어 오금잠제를 지낸다’고 전하고 있다. 신라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풍습으로 황금비녀를 봤다는 기록도 다수 전한다. 조선 유학자들이 부사로 와서 그렇게 없애려 했으나 결국 없애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단옷날이면 오금잠제보존회를 비롯한 지역민들이 지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삼척의 또 다른 신라기록은 일성왕이 서기 138년에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리고 이 신라 공주의 황금비녀 이야기나 국내 최대 규모의 기줄다리기, 해신당, 이사부장군의 목사자상까지 콘텐츠의 보물단지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지난 가을과 겨울, 우연히 ‘삼척 미로단오제’와 ‘태백산 천제’ 학술포럼에서 각각 축제콘텐츠 방안을 발제하게 되었다. 필자는 황금비녀 오금잠과 천제단의 천제주를 각각 지역 콘텐츠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 시대의 언어로 번역할 오금잠은 어떠할까. 기줄다리기나 해신당, 오금잠과 미로단오, 별신굿, 공양왕릉이나 준경묘 황장목과 속리산 정이품송의 나무 혼례까지 패키지로 묶이는 현대적 재해석이 절실한 때이다. 운탄고도가 삼척 도계부터 태백, 정선, 영월까지 길게 이어 성과를 내고 있듯이 신 관동팔경 시대를 새롭게 구상해 보면 어떨까. ‘육룡이 나르샤’처럼 동해안에 예맥국과 실직국, 우산국 로드를 만들어도 좋겠다. 물론 신화적 콘텐츠들이 양념처럼 풍성해지기를 소원한다.

바야흐로 로컬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는 지역경쟁력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수도권 중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채록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7번 국도를 오가며 탄생시킨 지도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의 봄날은 엊그제 입춘이 지났듯이 다시 오고 있다. 누가 저 하늘이 주었다는 콘텐츠에 우리 시대의 옷을 입힐 것인가. 또다시 새로운 봄날이 간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