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춘천학연구소 연구사
조선 후기 학자 ‘류희’ 한시 해설
문학·어학·의학 등 다방면 능통
당시 시단 문제에 강한 비판도

“옛 사람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그들의 마음과 행적은 종이 위에서 알 수 있지/천년 간격이라 까마득하지만 서로 문답하노라면/어느새 같은 방 안에서 손님과 스승을 대하는 듯/흥함과 망함은 꿈속인 양 끝없는 한이요/가슴 속 품은 예와 악은 태반이 의아하다네/나 죽어 좀벌레가 되기를 항상 바라노니/금박지로 싼 책에서 한가로이 세월 보내기를”(서파 류희 ‘독와팔영’ 중 네 번째 작품)

▲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된 서파 류희의 문집 ‘문통’. 총 44책, 69권에 달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된 서파 류희의 문집 ‘문통’. 총 44책, 69권에 달한다

서파 류희(1773∼1837)는 철저한 무명시인이었다.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박아(博雅·학식이 넓고 성품이 단아함)’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대과 응시 자격도 얻었지만 주류층이 아니었기에 권력을 뒤로 하고, 한 평생 가난한 선비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과거시험의 부정과 비리가 횡행했으며 실력보다는 파벌을 우선했던 암울했던 시대였다. 서파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자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경학·문학·사학· 어학·의학· 수리학·천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고 그것을 엮은 ‘문통’을 비롯해 우리말 어휘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꼽히는 ‘물명고’ 등 100여권의 책을 펴냈다.

횡성 출신 김근태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가 서파 류희의 한시 이야기를 담은 ‘나 죽어서 책벌레가 되리니’를 펴냈다. 서파의 한시 가운데 그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해 수록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 서파 류희의 우리말 연구서 ‘언문지’ 내지. 사진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서파 류희의 우리말 연구서 ‘언문지’ 내지. 사진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단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꿰뚫었던 서파는 시의 외형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시에 담긴 의식과 사상을 중시했다. 기존 시인들을 칭송하거나 비판할 때 과격한 표현도 꺼리지 않았다. 관리는 자신의 행실을 먼저 바르게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시인들의 글을 모은 허균의 시선집 ‘국조시산’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선집에 들어간 율곡의 시 한 편 때문이다. 뛰어난 작품들도 많은데 굳이 율곡 스스로 승려의 행적을 고백하는 문제적 작품을 수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파의 한시에 대해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고 고백한다. 잡다한 일을 소재로 읊은 시부터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는 시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형식의 시들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가 27세 때 지은 시 ‘문우도’에는 “소의 몸은 단지 크기만 할 뿐/모기 막을 힘도 없구려”라는 해학이 돋보인다. 한 시대나 시풍에 치우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지만, 결국 특정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 독립운동가이자 한학자인 정인보에 의해 서파의 글이 소개됐고, 2001년 서파의 후손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서파의 글을 기증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 나 죽어서 책벌레가 되리니/김근태
▲ 나 죽어서 책벌레가 되리니/김근태

김근태 연구사는 “당시 시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서파는 단순히 언어유희로서의 시 짓기와 자연경물의 묘사를 통해 미려함을 추구하는 데만 힘을 쏟는 풍조를 비판했다”고 밝힌다. 서파의 글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울림을 주고 있는 이유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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