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준 기자
▲ 박희준 기자

잘 버티고 있다

그거 하나쯤이야
사는 데 문제없으므로

나를 버리고 싶은 생각을 겨우 참아본다

모든 사람을 지우고 싶은 날
조용히 운동장을 도세요

이런 생각은 그만 접어두자 말하며
이런 생각은 그만 잊어버리자 생각하며

운동장을 잊을 정도로 돌았다

잊으려 할수록 또렷해지면 대개 그 생각이다
그러면 주먹을 쥐었다

누군가 울면 따라 울 힘을 남긴 채
닿지도 않을 대답을 준비한다

날씨가 좋네요 날씨가 좋아요 같이 걸을까요 날씨가 좋아요

마주 오는 사람의 눈을 내가 먼저 보았다

두어번 주저앉았지만 일어나 마저 운동장을 돌기로 했다


- 유수연, 믿음 조이기」,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2023, 창비
 

위로는 때론 이기적이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울음처럼, 슬픔은 그렇게 늪에 빠진 짐승과도 같다. 그 어떤 위로도 허상처럼 흩어지는 날이 있다.

‘잘 버티고’ 있는 줄 알았다. ‘그거 하나쯤이야’, ‘사는 데 문제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도 나아지는 게 없을 때가 있다. 때론 ‘나를 버리고 싶은 생각’도 하면서.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생각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외로운 싸움을 스스로 자처하고 삭히는 일의 반복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미움을 받다보면 다 내 탓으로 귀결된다. 미움의 씨앗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싹을 틔웠을 텐데, 미움의 뿌리는 한사코 마음을 파고든다. ‘주먹을 쥐’며 참아 봐도 그때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숨이 가빠지게 뛸 ‘운동장’이 필요했다. 

시기와 질투, 욕심은 끝이 없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길 때 불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개인마다 다르게 다가올 결핍의 영역이지만, 인지의 차이에서 시작된 미움은 무섭게 증식하고 암세포처럼 죽지도 않고, 은밀하게 퍼져나간다.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에서 멀어지려고 하기 마련. 불행에서 멀어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계속해서 영위하던지, 그 상황을 왜곡해 하향평준화 시켜 나만의 행복을 고수하는 방법이 있다. 무엇이 됐든 불행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비난을 계속한다면 ‘누군가 울면 따라 울 힘’조차 남지 않게 된다. 결국 ‘닿지도 않을 대답’을 혼자 되뇌고 말 것이다.

오늘도 나만의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있다. 밤마다 트랙을 돌고 있다면 ‘마주 오는 사람의 눈’을 유심히 살펴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두어번 주저 앉’았을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운동장’에는 따뜻한 손길이 가득하길 바란다. 때론 이기적인 위로일지라도.

오늘도 나만의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있다. 밤마다 트랙을 돌고 있다면 ‘마주 오는 사람의 눈’을 유심히 살펴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두어 번 주저 앉았’을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운동장’에는 따뜻한 손길이 가득하길 바란다. 때론 이기적인 위로일지라도. 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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