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잊지 않고 때마다 요구하는 하나가 바로 ‘편지’다. 연애를 시작한 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낭만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에 남편에게 묻는다. “여보 편지 안 써?”

글쓰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남편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곤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엔 편지를 보내주곤 한다. 엎드려 절받기라 해도 그렇게 받아낸 편지는 수줍지만, 입으로 하진 못한 다정한 말이 쓰여 있어 꽤 달다. 마치 다디단 밤양갱처럼 말이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1년에 적어도 2~3번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생일이라던가 특별한 기념일에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썼던 우리의 편지는 손 편지에서 이메일로 변했고 이제는 사과문 혹은 반성문이 돼가고 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풋풋했던 연애 시절의 애틋한 문장은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으로 변했다.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이 사라지고 그때 화를 냈으면 안 됐을 것을…그때 그런 말을 내뱉지 말았어야 했는데…미안하다는 말이 대신해버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폐허에서 흔드는 하얀 깃발이 돼버린 우리의 편지.

최근 일본 홋카이도로 짧은 출장을 다녀왔다. 남편과 서로에게 모진 말을 주고받은 뒤 떠났기에 출장 내내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남편에게 메일이 도착했고 그 속엔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이 쓰여있었다. 어느 때보다 반가운 화이트데이 선물을 받으니 여행을 끝내고 나를 반겨주는 남편 곁으로, 나의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옛 편지를 열어보았다. 내가 받은 편지가 아니라 내가 보낸 편지를.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담긴 약속과 다짐을 지키지 못한 지금의 자신을 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당시 스스로에게 도취했던 나는 과연 누구에게 편지를 썼던 것인가라는 생각에 말이다.

또다시 남편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팔았다는 미안한 마음도 함께 담아서 말이다.

노현아 now7310@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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