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심연수(1918~1945)는 국권이 없는 시대에 짧은 생애를 살면서 290여 편의 시와 소설, 수필, 평론을 한글문학으로 남겼다. 불운한 시대는 강릉에서 태어난 그를 러시아, 중국, 일본 이주하는 삶으로 이끌었으나 언제나 문학과 함께였다. 광복 직전에 중국 왕청현에서 불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나 편지, 공책, 일기, 도서, 사진, 스크랩 등 다양한 유품은 중국에 남은 유족에 의해 잘 간수됐다가 지금은 강릉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카 심상만씨에 의해 고국에 안긴 600점 가까운 자료는 2023년 말『심연수문학사료전집』(강릉문화원·심연수기념사업회·강원도민일보)으로 완간됐다. 이 자료를 직접 정리할 기회를 가졌던 필자는 그가 남긴 작품, 생활기록, 유물을 소개하며 스산했던 시대에 한 시인을 넘어 강원인 이주사를 공유하려 한다.



지금은 중국 현지 발음으로 ‘지린성 룽징’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에게는 ‘길림성 용정’으로 통한다. 1940년 용정국민고등학교 졸업학년인 4학년에 올라간 심연수의 일기를 보면 요즘과 같이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1월 말에 개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1940년 1월 27일자 일기에 ‘오날은 사학년의 제 1일이다. 개학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선생님과 친구 이름까지 남길 정도로 꼼꼼하게 썼기에 학기 초 교실 풍경과 친구들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는 입학 정원이 얼마안돼 한국인들이 입학난을 겪는 실상도 일기에 담겼다.

학기 초가 되면 다짐이나 각오가 남다르기 마련인데 더구나 4학년 졸업학년을 맞았으니 중압감이 적지않았음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으로 진학하든 직업을 구해 사회로 진출하든 갈래 길에 서게 됐음을 털어놓는다. 집안 형편이 괜찮으면 진로든 취업이든 결정에 자유로움이 있을 것이나, 힘겨운 논밭 농사로 생계를 이어야하는 팍팍한 사정이었기에 졸업 후의 진로를 마음껏 정할 처지가 아니어서 더 복잡한 심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1월 27일 개학한 후 며칠간의 일기에는 복잡한 내면의 풍경이 담겨있다. 한달 여의 방학을 끝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들뜬 기분이 들었다가도 ‘지금부터 하여도 늦지아니할가 하면은 된다지’라며 추스른다. 1월 30일자 일기장 상단에는 ‘참된 삶을 하려면 노력보다 나흔 것은 없다’라며 꿈을 향해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는 다짐을 하고 있다. 1월 31일자 일기장 윗쪽에는 ‘잡초 속에서 자란 한송이 국화를 사랑하고 싶다’라고 썼다. 힘겨운 풍파를 거뜬히 이겨내겠다는 꺾이지 않는 내적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있다. 박미현 논설실장·문학박사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월 27일 토요일 청

오날은 사학년의 제 1일이다

개학일이다

학교에 가니 벌써 집합을 하엿더라

첫날에 지각을 하엿고나

교장선생의 훈화가 끝나고 이희갑

선생님의 29일에 등교할 주의

가 끝나고서 개학식은 끝을 마첫다

여러 동모들을 반가히 만낫다 그리고

신현근이 집에서 여러 동무들이 같이

방학 동안의 이야기를 하다

그리고 집으로 도라오다

오날은 해성학교 합격자 발표일이다

아침에 학교에 같다가 가보니 해수만

이 합격이다 소학교도 입학난이

이처럼 심하고야 어찌하랴?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월 28일 일요일 청 풍

용정에 가서 서점을 도라다니다가

소설 ‘와의 중’ ‘탈출’을 50전

에 사고 또 원고용지를 35전에

사가지고 정거장을 거처 집으로 오다

집에 와 사가지고 온 소설)을 보다

‘푸랫트홈’엘 나가니 송기수선생이

고향에 가섯다가 도라오시더이다

도라오는 학생들도 많엇더이다

휴가에 집에서 살이 많이 저서 오는 모양

그러나 날까라운 새 정신이 보엿노라

문학의 길은 이렇고나 소설도 문학이겟지---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월 29일 월요일 청 풍

아침에 용정에 갈 준비를 하엿다가

해수 입학 수속을 집 사람에게 말하고

용정에 가서 여러 곧을 다니다가 봉춘이 왓

다고 하기에 가서 방학간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다가 학교에 가서 전웅규선생의 주의

와 소제를 하고 시간표를 새로 벼기고 출석

석차를 개정한 다음에 담임 이시우선생님

이 4학년 되여서 할 일과 여러가지 일에 대하여

말슴있은 뒤 주도일군이 집에가 있다가 이봉춘)

집을거처 이?주군과 같이 이시우선생댁을 방

문하다 또 주연호군을 이선생댁에서 만나다

나오다가 이군이 한택 잘 내어 우리들은 냉면을

먹었노라 개학이 첫 맞도 그럴뜻하도다

누이 집에도 내가 한 섬 썻으니 그 국수도

맞있엇노라 아마 생물은 먹어야 사는 모양---―

오날 석차는 16번이엿노라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월 30일 화요일 청

참된 삶을 하려면 노력보다 나흔 것은 없다

일즉 누이집에서 집에 와서 교과서를

가지고 학교를 갓노라

첫 기분이 아조 좋앗노라 바람 부는

운동장에는 월여를 그리든 학우들이

모여든다 나도 한사람이 학도이겟지 하니

남에게 지지 않는고나 하고 생각하엿다

학과는 여실히 치를 수 없엇노라 선생님

도 첫날이니까 앞날 진과이야기를 하다

오날은 내가 20번이더라 그래서 또 내가

스스로 김군이 39번임을 알고 바꾸어

서 놓으니 내 번호는 39번으로

되엿다 어쩐지 내 마음이 흐믓하다

상급이냐 취직이냐 기로는 벌서부터

상급이라면 이과냐? 그렇이 않으면 문과냐

내 소질에는 이과는 좀 어떠한 듯 하더이다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월 31일 수요일 청

잡초속에서 자란 한송이 국화를 사랑하고 싶다

학교엘 가서 정확히 시간을 보앗엇다

들어오신 선생마다 잘 공부를 하야

남에게 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라 하

엿더이다

오날은 벌서 정월이 마즈막이고나

4학년도 몇 달 아니 남엇고나

지금부터 하여도 늦지아니할가

하면은 된다지 나도 그러켓지 하니 안심

된다 그러나 남에게 밎지지는 말 것이라

고 생각하엿노라 진실히 살려하는

정신이 있고야지 참된 삶을 하려고

헤매이는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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