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춘천 캠프페이지 반환 19주년
1951년 춘천 근화동 미군부대 배치
미군 상대로 주변 상권 형성 호황 누려
2005년 폐쇄 이후 환경오염 논란도
시, 부지 매입 후에도 활용안 못찾아
시민공원·문화공간·청사 이전지 등
시장 바뀔 때마다 구상 변경 ‘제자리’
민선 8기 도시재생 혁신지구 추진
일각 “시민 공론화 우선돼야” 지적
주민 “지역 부흥시킬 계획 내놔야”

뉴스의 홍수시대입니다. 그럴수록 일회성 보도에 그치는 기사보다 깊이 있는 기사의 가치가 더욱 독자친화형으로 다가갑니다. ‘뉴스 플러스’는 ‘기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를 기본으로 삼아, 이슈를 더욱 밀착해 심층취재 합니다. ‘뉴스 플러스’를 통해 일회성 보도에 가려진 뉴스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춘천 도심 한복판에 뻗어 있는 54만㎡의 땅은 무한한 가능성과 70여 년의 한(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6·25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군이 점령한 이 땅은 부지 반환이 끝났지만 여전히 활용 방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29일은 캠프페이지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꼭 19주년이 되는 날이다. 50년 미군 주둔 이후 20여 년 간 방치된 캠프페이지를 진단한다.

▲ 29일은 캠프페이지에서 미군이 철수한지 꼭 19년인 날이다. 반환된 지 19주년이 지나도록 활용계획을 찾지 못하고 있는 춘천 캠프페이지. 70여 년의 한(恨)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호
▲ 29일은 캠프페이지에서 미군이 철수한지 꼭 19년인 날이다. 반환된 지 19주년이 지나도록 활용계획을 찾지 못하고 있는 춘천 캠프페이지. 70여 년의 한(恨)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호

■19년째 건설 철벽에 둘러싸인 나대지

28일 찾은 캠프페이지. 쭉 뻗은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놓여 있는 드넓은 땅은 황량하기만 하다. 외곽에는 체육관 등 일부 건물이 들어섰지만 대부분은 공터로 남아있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반환 후 19년째 이상태다.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차량들, 승객들을 실어나르는 열차와 고요한 캠프페이지의 모습은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춘천 캠프페이지는 6·25 전쟁, 혼란의 정전 70년이 그대로 압축된 곳이다. 1950년 9월, UN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춘천이 수복됐다. 그 다음해인 1951년 3월 미8군이 군수품을 공급하는 비행장 활주로를 춘천 근화동 일원에 만들기 시작했다. 최전방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로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취지이기도 했다. 캠프페이지라는 이름은 6·25전쟁 때 공을 세운 페이지 중령을 추모하는 뜻을 담았다.

춘천 중심지에 들어선 미군부대는 2005년 철수까지 반세기 동안 춘천 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양로와 근화동, 명동 일원은 미군들을 상대로 한 상권이 형성됐다. 중앙시장 안에 양키시장이 들어선 것도 캠프페이지 때문이다. 외국인 전용 술집, 양복점은 물론이고 난초촌, 장미촌, 백합촌 등 기지촌까지 들어섰다.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외국계 은행도 설치됐다.

중앙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했던 A(80)씨는 “1980년대, 1990년대는 캠프페이지 덕분에 먹고살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는 대부분 현금으로 구입하니까 하루 영업이 끝나면 비료포대로 한 자루씩 매출이 나오던 때”라며 “미군들이 외출할 때마다 중앙시장 전체가 들썩거리고 미군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장들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미군들에게 세를 주며 살았던 김모(86)씨 역시 “‘미군 1명이 한국인 10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2005년 3월29일, 캠프페이지 폐쇄식이 열렸다. 이후 춘천시는 2012년부터 175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국방부 소유였던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고 2016년 부지 매입을 완료했다. 50여 년을 미군에게 내어준 땅을 다시 찾아왔지만, 캠프페이지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옛 캠프페이지 전경
옛 캠프페이지 전경

■매번 바뀌는 활용 계획, 토양 오염 논란

캠프페이지의 기구한 운명은 역대 춘천시장들이 내세운 활용계획안 봐도 알 수 있다. 54만㎡라는 드넓은 부지는 어느 때에는 공원이 됐다가 또 어느 때에는 첨단산업기지가 됐다. 민선 6기 춘천시는 캠프페이지를 춘천의 센트럴파크로 만들겠다고 했다.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에 들어갔지만 새로운 시장이 당선된 민선 7기 때는 공원과 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그려졌다. 민선 8기 강원도정이 들어서면서 전면 백지화 됐지만 민선 7기 후반, 캠프페이지는 도청사 이전 부지로 낙점되기도 했다.

미군 철수 이후 캠프페이지는 끝없는 환경오염 논란에 시달렸다. 춘천시는 캠프페이지 2차 오염 토양 정화작업이 한창이다. 면적은 39만3468㎡. 캠프페이지 54만㎡ 대비 72.86%에 달하는 규모다. 앞서 춘천시는 지난 2021년부터 지난 상반기까지 15만600여㎡에 대해 1차 오염 토양 정화 작업을 거쳤다. 1차·2차 정화 작업에 들어간 예산은 모두 140억원으로 국방부에서 100% 지원했다. 문화재 발굴 조사도 남아있어 2025년은 돼야 캠프페이지가 온전히 시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전망이다.

2005년에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방사능 오염 조사 필요성이 제기, 시에서 조사를 벌였지만 인위적인 방사능 수치는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1년에는 퇴역 미군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 캠프페이지에도 고엽제가 폐기됐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춘천 캠프페이지 철거 당시 모습
춘천 캠프페이지 철거 당시 모습

■여전한 대립 개발 vs 보존

민선 8기 춘천시가 캠프페이지 일원을 국토부 국가도시재생혁신지구로 신청,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캠프페이지도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도시재생 혁신지구는 대도시·지방 거점도시에 있는 대규모 유휴부지 등을 활용해 상업·산업·주거 등 도시기능을 복합적으로 도입, 지역 활력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되면 건축·도시·교통·재해 등을 통합 심의해 행정절차가 대폭 간소화된다. 자연녹지지역을 상업지역·준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을 높일 수 있어 토지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춘천시는 이번 후보지 선정을 계기로 캠프페이지를 문화와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전체 사업면적은 52만㎡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대응 도시숲의 기능은 유지한다.

개발과 보존의 가치는 여전히 상충한다. 박근홍 근화동 통장협의회장은 “캠프페이지를 되돌려 받은 지 20년이 다 되도록 해 놓은 게 하나도 없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희망고문이 반복된 셈”이라며 “개발이 늦어지는 사이에 인구는 다 빠져나가고 근화동은 이제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지역이 활력을 되찾으려면 이제라도 캠프페이지에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소양동은 캠프페이지가 주둔한 50년 간 급격한 성장과 쇠퇴를 겪었다.  
소양동은 캠프페이지가 주둔한 50년 간 급격한 성장과 쇠퇴를 겪었다.  

권용범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캠프페이지는 시민공원으로 만들기로 하고 어느정도 절차가 진행됐던 사안”이라며 “민선 8기 춘천시에서 이 계획을 바꾸려는 의도도, 정당성도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청사 부지가 동내면으로 이동한 이후 갑작스럽게 도시재생혁신지구라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시의회나 시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 사업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도시재생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해서 어떠한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춘천시는 마치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민섭 춘천시의원은 “도청사 이전이든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이든 지역사회 차원의 공론화 과정 없이 지자체장의 의지만으로 추진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공원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지금 방향이 다시 달라졌는데,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도 급하게 추진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캠프페이지 개발 방향을 논의하는 설명회가 내달 마련된다. 20여 년 간 그렸다 지우길 반복했던 개발 계획을 이제는 확정할 수 있을까. 오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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