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내용 글자 속에 함축

photo_caption
 원체 사물을 가볍게 바라보기 즐겨하는 이가 밑도 끝도 없이 말머리를 들이민다.
 "저런 포스터는 만들기 매우 쉽겠다." 자기도 조금만 머리를 사용하고 공을 들이면 저런 것쯤 만들어낼 수 있다는 듯, 입가에 가는 웃음을 머금으며 글자들로만 가득한 포스터를 가리킨다. 하긴 영화 내 등장인물들로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억지 자세나 환상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뽀얀 문구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언젠가 콜럼버스가 그랬다고 한다. 알고 보면 누구나 쉽게 달걀을 세울 수 있지만 그것을 먼저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미 남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땅을 버젓이 자기가 발견했다고 흰소리 해대는 데는 할 말이 없지만, 맨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은 가상하지 않느냐는 구차한 변명은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글자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타이포그래피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어쩌면 배우들 인물사진으로 지면 가득 채우는 게 더 쉬울 지도 모른다. 포스터와 홍보를 위한 시간과 투자를 별도로 해야 한다는 면에서 타이포그래피나 스틸 사진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관건은 어떤 아이디어로 영화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표현해내느냐 하는데 있다.
 영화 '식스 센스'는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육감)을 나타내기 위한 아라비아 숫자 6을 불꽃 형상으로 만들어 이미지화하고 있다. '식스 센스'는 인간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다섯 개의 기관(눈, 코, 귀, 입, 피부)외에 직감적이라 할 수 있는 여섯 번째 감각을 말한다. 초감각적이라고도 말하는 이 기관을 영화는 주된 장치로 사용하였고 이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포스터를 생각해낸 것이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포스터와 영화 내용은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영화 '에이 아이'는 타이포그래피의 전형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복제한 로봇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에 흐르는 영화를 위해 이처럼 영화제목을 이미지화한 포스터가 구상되었다. 단순히 알파벳 A와 I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글자를 영화 내용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지의 연속과 균형이라는 면에서 많은 고민과 노고를 포스터는 담고 있다. 또한 글자를 통한 음각과 양각의 조화라는 면에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포스터의 활자체가 크고 뚜렷하거나 전체적인 색상이 강렬하고 또렷하다고 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 면의 포스터이지만 그 속에 이야기가 있고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에 담는다. 그런 면에서 이들 포스터가 몇 개의 머리글자로만 이루어진 포스터이지만 나름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두고두고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 작업이야말로 분석적인 다섯 개의 감각기관에다 직관적인 여섯 번째 감각까지 모두 요구되는 일일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인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수한 날을 지새워야 가능할 일이다. 작은 조각에 온 우주를 담아야 하는 부담이 무엇보다 큰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매력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