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왕 이사부 재조명과 21세기 해양강국의 비전’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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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사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KBS춘천방송총국과 공동으로 18일 강원대 삼척캠퍼스 강당에서 ‘동해왕 이사부 재조명과 21세기 해양강국의 비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해양수산부와 강원도, 삼척시, 삼척시의회, 강원대 삼척캠퍼스, 이사부장군기념사업회, 삼척문화원 등이 후원한 이날 심포지엄에는 학계와 향토문화계, 해양수산계, 장보고 기념사업회 등에서 전문가들이 발제와 토론을 맡아 1500년전 동해상에서 이뤄진 이사부의 해양개척 의미와 해양문화·산업 발전 과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전개했다.



[제1 발제] 삼국사기를 통해 본 이사부 인물 고찰

한강상류 점령·대가야 정벌 장본인
 이사부는 6세기 전반의 신라가 오늘의 삼척, 강릉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진흥왕때 한강상류역을 점령과 대가야 정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다. 지증왕대에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군주의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고, 진흥왕대에 병부령으로 크게 활약했으므로 군주제와 병부령제의 도입과 운용에 대해서도 그글 통해 중요한 단서를 파악할 수 있다.
 내물왕의 4세손이라고 했으므로 지증왕과는 숙질 관계다.
 그러나 법흥왕 대에 왕위계승 범위를 3대가계 혈족집단으로 제한한 조치는 이사부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하기 위한 행위로 파악된다. 이후 이사부는 불교공인과정 등에서 견해를 달리해 법흥왕 재위시 칩거를 거듭하다 나이 7살에 왕위에 오른 진흥왕 대에 다시 정치 일선에 등장해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국사 편찬과 군제정비 등 내치에도 역할을 하게된다.
 앞서 24년간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동해안 영토(실직 등)를 지증왕 6년(서기 505년) 신라가 다시 수복하는 과정에도 이사부의 절대적인 공로로가 있었고, 지증왕 6년과 13년에 실직주와 하슬라주를 잇따라 차지하게 되는 것도 이사부다.
 50년 이상 정치일선에서 활약한 이사부는 신라 중고기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제2 발제] 한국 고대의 해양문화와 이사부

도 환동해권 중심역할 토대 마련
동해안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간만의 차이도 적어 연안 항해가 수월하다. 따라서 일찍이 원거리 항해를 통한 접촉이나 교역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해 중부 해안에서 비교적 대규모 정치집단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은 강릉, 삼척 등 이었고 특히 삼척의 오십천 하구는 항구가 발달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 이어서 동해 연안항로의 중간 기착지가 된다.
 강릉의 하슬라국, 삼척의 실직국, 울릉도의 우산국 등은 이런 조건하에서 출현한 군장국가들이다. 고대국가가 발전하면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됐던 동해안은 그 영유권이 점차 신라로 넘어가고 이사부를 실직주 군주로 임명한 것은 신라 북방진출의 서막이었다.
 신라의 동해안 지역 점령과 우산국 복속은 동해해상권 장악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사자를 가져가 위계로 굴복을 시켜야 할 만큼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보유했던 우산국을 정벌, 동해안 제해권을 확보하지 않는 한 동해안 지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결국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안 지역과 한강유역, 낙동강 하류 가야를 병합해 해상 무역 루트를 장악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동해 해상권 장악은 강원지역이 환동해권 중심지 역할을 하는 모델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제3 발제] 이사부 유적과 해양 국방 요충지 삼척

첫 군주 임명… 우산국 정벌 출발지
 삼국시대 이전에 삼척에는 실직국(혹은 실직곡국) 이라는 성읍국가가 있었다. 실직국의 중심지였던 삼척은 오십천 하류에 형성된 동해안에서 가장 좋은 자연항구를 기반으로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한 해양국가였다.
 남북으로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삼척은 고대국가가 성장하면서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전을 벌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6세기초 신라가 삼척에 최초의 주를 설치하고 이사부가 첫 군주에 임명된 것도 군사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던 삼척은 이사부가 단행한 우산국 정벌에도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오십천 하구 자연포구를 중심으로 해상교통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삼척은 우산국 정벌에서도 출발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에도 삼척은 ‘실직정’ ‘북진’ 등의 군사기지가 설치되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도 북방의 몽고 침입뿐 아니라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기속적으로 수행했다. 조선에 와서도 태조 6년에 삼척진을 설치한데 이어 임진·병자 양란을 거친뒤에는 영장을 두고 토포사를 겸직하게 해 영동 9개군과 울릉도의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삼척이 군사기지로서 가지는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는 곳이 요전산성(寥田山城)인데, 이 산성은 수군과 관계가 매우 깊다.

[제4 발제] 해양 역사인물과 문화콘텐츠 사업

영상·캐릭터 등 전략상품 개발해야
 해양국가로서 해양문화를 일으키고 해양지향의 인식전환을 이루어 섬과 바다를 더욱 지혜롭게 활용하는 토대를 이루는 일은 지금 조금도 미룰 수 없고, 그런점에서 해양 영웅을 소재로 한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제작은 해양발전을 위한 문화기획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콘텐츠에는 스토리가 있듯이 해양역사인물의 콘텐츠 산업에도 스토리텔링이 우선 중요하다. 대장금과 해신을 비롯해 다모, 불멸의 이순신, 이산, 태왕사신기, 대조영 등 지금도 지상파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사극들에는 모두 스토리텔링이 근간을 이룬다.
 세계의 해양 영웅은 △해양 개척(진출)의 영웅 △해양 전쟁(수호)의 영웅 △이야기 속의 해양인물 등 세가지 테마로 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사부 또한 이 세가지 테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해양 영웅의 영상 콘텐츠 개발 및 캐릭터 제작 사업은 지역특화 전략 상품 개발을 목표로 하게된다. 지역특화 전략상품 개발이란 지방의 문화 다양성을 토대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해양 영웅의 영상 콘텐츠 개발 및 캐릭터 제작은 지역이 글로벌 문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주제로 생각된다.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해양 영웅을 스타콘텐츠로 만들고, 파생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 토 론 요 약 ]]

배재홍 이사부 우산국 정복시점 파악 필요
김태수 해상무역권 중심지 역할 의미 부각
최동열 해상운용 능력이 우산국 정벌 기반
유재춘 신라-실직국 오십천서 장기간 대치
이청희 울릉도 정벌 고구려세력 차단 목적
나광열 해양영웅 지역개발 테마로 활용해야
박성미 시간·비용 계산 종합계획 수립 필요
천인봉 시대조류 맞는 컨텐츠 활용 최우선
조승호 지자체-언론 힘모아 추진해야 성공


 △배재홍=삼국사기의 본기와 열전에 보면 이사부가 하슬라 군주로서 우산국을 정복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보면,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사부가 하슬라주 군주로 있을때 우산국을 정복했는지, 아니면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한 공으로 하슬라주 군주가 된 것인지와 함께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복하러 갈때에 출발지가 어디였는지, 궁금하다.
 △이명식=삼국유사는 이 기록 말고도 다른 기록들의 경우도 그 시대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적고 있어 그런 표현이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사기내용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이사부는 이미,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실직주 군주로 있을 때 마친 것으로 보인다. 또 그 당시 해류의 흐름과 거리를 종합했을때 삼척이 우산국 정벌의 출발지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김태수=지금까지 삼척은 군사요충지로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삼척이 군사적 도시의 이미지만 많이 부각돼 왔는데, 해상무역권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의미도 크다. 울릉도와 대마도의 교역관계, 또 고구려와 일본의 교역루트 등을 봤을때, 삼척이 그 당시 환동해권의 무역권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삼척의 환동해 해상교역의 중심지 역할 에 대해 발표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윤재운=삼국시대까지는 삼척 등 동해안에서는 자연포구를 갖춘 지역들이 연안 항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 동해를 거쳐 일본으로 향하는 항로도 발달해 있었다. 동해를 건너 일본의 혼슈와 서쪽인 규슈 쪽으로 간 기록이 있다. 발해 건국 존속 기간에는 34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같은 해상활동에서 삼척은 그 지리적 위치상 연안항로의 중심, 이후 원안항로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신석기부터 남북국 시대로 이어지는 기간동안, 러시아 연해주와 함경도 일본 등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도 활발한 해상교역은 실증 되고 있다.
 △손승철=덧붙이자면,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17차례, 발해에서는 34차례 이상 동해바다를 건너 일본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일본 니가타를 방문했을때 발해 사관들이 묶었던 사관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사부를 중심으로 한 동해의 교류 교역을 생각할때도 항로 고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헌사료 고증, 유적유물, 항로의 과학적 증명이 아우러질때 명실공히 이사부와 삼척의 여러 사업이 활발해 질 것으로 생각한다.
 △최동열=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 중 실직국과 음즙벌국(경주 안강)이 전쟁을 벌이는 기록이 나오는데 해상주도권 다툼으로 보인다. 즉 이런 동해안의 해상운용능력이 우산국 정벌의 기반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또 발해에 이르러 해상운용이 더 활발해지는데, 동해종단 항로의 경우 울릉도가 중간기착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또 우산국이라는 명칭이 고려 의종 이후로 사서에서 사라진다. 발해 이후 등장한 동여진족이 동해를 휩쓰는데, 교역의 역사가 침탈의 역사로 바뀌면서 변화되는 과정에서 우산국이 쇠퇴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윤재운=신라에는 국가 정책적으로 배를 만드는 선부라는 조직이 있었다. 그런 기반으로 우산국 정벌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며, 금관가야 정벌 역시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산국은 동여진족, 즉 역사에서 도이(刀伊)의 적(敵)’이라고 불리는 여진족들이 울릉도를 침탈한 뒤 쇠퇴기에 들어서고 고려시대 원의 간섭기 등을 거치면서 해양활동도 많이 위축된다.
 △손승철=10∼11C 정도가 되면 동여진족이 내려오고, 12∼13C엔 왜구가 출몰한다. 이때부터 조선시대에 공도정책이 펼쳐지고 울릉도 사람들을 육지로 철수시킨다. 그렇지만 방치가 아니라 삼척부사가 3년에 한번씩 울릉도를 안핵하고 중앙정부에 보고한다. 조선초기 기록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삼척부 소속으로 울릉도가 기재 돼 있있다.
 △유재춘=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삼척을 점거하게 되는데 올라오자마자 바로 실직국을 제압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삼척시내 오십천을 사이에 두고 양측 토착 세력과 신라군이 꽤 오랫동안 대치 하게 되고, 대치과정에서 신라군이 요전산성터를 기반으로 공격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이미 신라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가 됐다. 요전산성에는 내성이 있는데 토성 성벽에서도 신라 토기가 나왔다. 고려 우왕대에 다시 그 성을 확장 개축 과정에서 토성벽에 이미 있던 유물이 들어간 것으로 본다.
 △이청희=출항지에 대해서는 삼척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에 동조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이사부에 관한 명칭 등이 다르게 나온다. 이와 함께 이사부가 당시 울릉도를 정벌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신라와 대립관계에 있던 고구려 견제의 전략적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즉 고구려의 후방세력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가능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차장섭=삼국사기와 유사의 기록이 다른데 가장 눈에 띄게 다른점이 무엇인가이다.삼국사기는 이사부, 유사에는 박이종이라고 나오는데 다른사람 아니냐? 라는 질문들이 있다. 이종은 이사부의 별칭이다. 삼국유사와 사기의 기록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인물을 기록한 것이다.
 △나광열=해양영웅 인물들은 지역개발과 관광개발 테마로 활용성이 높다. 인물중심의 디지털 컨텐츠와 장소적인 배경 컨텐츠 개발도 필요하다. 실제 가보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역 마케팅의 수단이 되며 관광개발이 된다. 이사부에 대한 고증을 통해 삼척에서 할 수 있는 착지는 해양영웅테마파크의 조성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열기가 식었을때는 어렵다. 따라서 컨텐츠 개발과 디지털, 하드웨어 등이 함께할때 성공적 관광개발 전략이 될 것 같다.
 △박성미=역사인물을 부활시킬때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홍길동을 예로 들었을때 출생지와 활약지 등을 따져 지역브랜드화 시키기 위한 지자체 간 싸움이 많다.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했을때 어느 지자체에서 비용을 많이 냈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이사부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모은 비용의 결과물은 지역으로 간다. 또 물리적 시간과 비용 등을 계산해 종합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천인봉=문화적 컨텐츠 활용에 최우선 고려사항은 시대조류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보고의 이미지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한 결과 해상왕, 무역왕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후 역사스페셜 등 방송매체를 활용하게 됐으며 민간투자까지 이끌어내게 됐다. 모든 비용을 지역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힘들다. 즉, 시장성 창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 관건이다. 또한 컨텐츠의 일관성을 가지고, 단일화된 이미지로 연관사업을 펼쳐야 하며 전문가그룹을 아웃소싱해 활용해야 한다.
 △조승호=일반적으로 자치단체의 인물 선양 사업은 구체적 방법으로 유적지를 조성하고 선양사업의 구심점이 되는, 행적과 사상을 선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부분들이 조화를 이뤄 추진되면 50%는 성공한 사업이라고 본다. 자치단체와 지역언론이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하며,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공감대를 얻어야만 성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석규=역사인물을 활용할때는 철저한 고증, 체계적인 기획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이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정리/박지영 jy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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