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장<戶長>의 전설’ 현대까지도 각색 반복

▲ 왜구로부터 동해바다를 지키는 묵호 호장의 전설이 전해지는 까막바위.

‘전설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가 보다.’

동해시 묵호동과 어달동의 경계 지점의 바닷가에는 유난히 검고 큰 바위 하나가 서있다. 이 바위는 ‘까막바위’로 불린다.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것. 까막바위에는 예부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는 조선시대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에 인품이 후덕하고 어려운 사람은 물론 지나는 걸인까지 돕는 의로운 호장(戶長)이 살고 있었다. 당시엔 왜구가 수시로 출몰해 재물을 빼앗고 백성을 학살하며 부녀자를 농락하는 등 그 폐해가 극심했다.

호장은 앞장을 서서 왜구들에게 대항했다. 하지만 왜적은 마음껏 재물을 노략질하고 호장의 몸을 묶어 배에 싣고 갔다. 호장은 분통이 터져 “이놈들아, 네가 너희들에게 잡혀가느니 차라리 죽어 귀신이 되어 네놈들이 다시는 이 곳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물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러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천둥과 번개가 치는가 하면 사나운 파도가 일어 왜구가 탄 배들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요행히 난파되지 않은 배 한 척이 달아나자 난데없이 거대한 문어 한마리가 나타나 그 배를 내리쳐서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왜구들이 모두 죽었다.

왜구의 배들이 침몰하자 하늘이 맑게 개고 파도는 잔잔해 지면서 한 떼의 까마귀가 몰려들어 왜구들의 시체를 뜯어 먹었다. 그런데 이 문어는 어진 호장이 죽어서 원수를 갚으려고 변신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왜구는 까막바위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였다고 한다. 이 까막바위 밑에는 큰 굴이 두개 있는데 이 굴 속에 호장의 영혼이 살면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전한다. 어느 날 마을 사람이 까막바위 밑에 있는 굴속에 들어갔더니 큰 문어가 있어 잡으려 하자 갑자기 수십 마리의 까마귀떼가 날아와 마구 울어대기에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이 까막바위 밑을 지나가면 문어에게 잡혀 먹는다고 이야기가 전해진다.

▲ 묵호 호장 전설을 형상화한 문어 조각상
이 까막바위 전설은 한국전쟁 때는 북한 인민군들이 이곳에서 수장돼 문어에게 잡혀 먹혔다는 전설과 함께 미군 폭격기가 이곳에 떨어져 조종사가 문어에게 잡혀 먹혔다는 것으로 각색돼 전해지기도 한다. 까막바위 전설은 착한 일은 서로 권하고 나쁜 짓을 하면 벌준다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권선징악형의 전설인 것.

한국전쟁때 함경북도 신포에서 피난 내려와 안묵호 마을 끝자락에 자리잡은 짹짹이 할머니로 통하는 김보배(87·동해시 묵호동 19통1반)노인. 짹짹이 할머니는 욕을 하도 잘해 붙여진 김 할머니의 별명이다. 그는 까막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곳 까막바위가 있는 곳은 묵호동에서 어달동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지. 리어카도 다니지 못하고 겨우 지게를 지고 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닐 수 있는 소로였어. 길은 험한 돌산 중턱으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었고 까막바위 쪽으로는 까맣게 절벽을 이뤘지. 돌산에서 수시로 돌이 굴러 내려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나 다녔지.”

▲ 까막바위 전설을 전해주는 짹짹이 할머니로 통하는 김보배 노인
한국전쟁 이후 묵호항 축항공사를 위해 까막바위가 있는 돌산은 채석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돌을 캐 ‘가시랑차’라는 공사용 가설 축전기차를 이용해 묵호 축항공사장으로 돌을 날랐다고 지역주민들은 전한다.

까막바위는 어부들이 안전항해와 정치망 그물을 치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이는 까막바위 주변에 고기가 많아서 갈매기와 까마귀들이 많이 몰려와 ‘까악 까악’ 짖으며 무리지어 하늘을 날았다. 때문에 어부들이 정치망 그물을 치거나 먼 바다에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가 묵호항으로 입항하는 기준점으로 삼은 것이다. 까막바위는 과학적인 항해장비(GPS) 없이도 어부들이 안전하게 배를 몰아 항구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한 길잡이 역할을 한 셈이다.

까막바위가 있는 곳은 이제는 묵호항에서 대진동까지 2차선 아스팔트포장 도로가 말끔히 닦이고 횟집이 들어서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또 까막바위가 있는 곳에는 동해바다를 지키기 위해 문어가 됐다는 묵호동 호장의 전설을 형상화해 초대형 문어상이 만들어져 있다. 인근에는 남대문의 정동쪽에는 까막바위가 있다는 국립지리원의 공인표지석이 1997년 10월 26일 세워져 있다.

이 표지석에는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은 이곳 까막바위 입니다(북위 37도33분)’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동해/전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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