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강원도 사이 숨겨진 가을빛 명소
포천서 화천 가기 위해 말을 끌고 간 데서 유래
사창리, 은둔 역사 지닌 오지서 현재 왕래 용이

▲ 도마치 정상의 표지판. 도마치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과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경계를 잇는다.
   
모든 아쉬움은 끝자락에 나타난다. 어떤 시간이든,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선인의 경지에 다다랐거나 세상 잡사에 무심한 성격일 가능성이 크다. 계절의 끝자락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을은 해가 바뀌면 다시 오지만 사람들은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한줌의 햇볕이라도 더 쐬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긴 그래서 사람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명지산 자락, 해는 중천에 떠 있어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조바심에 가깝다. 햇살이 눈부심의 경계를 넘어 환희의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명지산 계곡을 따라 험로로 유명했던 도마치 가는 길이 깔끔하게 포장돼 알고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일행 모두가 카메라를 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도마치 고개 아래의 은행나무 앞에 도열해 있다. 은행나무를 앞세운 나무들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역광을 받아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단풍이 곱다는 얘기는 일기 변화가 뚜렷하고, 공해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명지산 일대가 그렇다. 산악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나 4륜 구동으로 오프 로드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숨겨 놓은 업힐, 다운 힐 명소’였으니 도마치 가는 길의 풍광에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니 경계와 경계를 오가는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평을 두고 ‘사람 살기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고 했지만, 가평에서도 험한 산을 끼고 있는 북면 명지산 쪽은 휴(休)를 생각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 된 셈이다. 치열함이 담보돼야 하는 삶(生)과 휴(休)는 이렇게 길의 의미를 다변화시킨다. 길의 의미를 저작하면 그렇지만, 알고 보면 명지산과 이웃한 화악산 등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골짜기 곳곳은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이들의 터전이었다.
▲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을 잇는 도마치. 비포장 도로일 때는 오프로드 마니아들이 아끼는 코스였다. 지금은 승용차 여행자들도 쉽게 넘을 수 있는 한북정맥의 한 지점이다.

도마치에 이른다. 여기서 경기도 가평군 북면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으로 경계가 달라진다. 도마치는 해발 690미터로 강원도의 떠르르한 고개들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의미소는 크다. 광덕 백운 청계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능선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산행기에는 도마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도마치는 道馬峙다. 가평 사람들이 경기도 포천이나 강원도 화천으로 가기 위해 말을 끌고 넘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예컨대, 도마치는 지금은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석룡산과 화악산 사이의 방림고개와 같은 역할을 해온 셈이다.

바람이 차다. 도마치에서 10킬로미터쯤 내려가 닿는 화천군 사내면 일대는 연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인 곳 아닌가. 도마치 아래로 내려오니 사창리다. 해를 보고 내려왔는데 사창리에 이르니 벌써 해가 뉘엿해지려 한다. 산자락 아래 깊숙이 들어앉았다는 뜻이 되는데, 사창리 일대가 예전 3대 8관으로 불렸다는 말이 실감난다. 여덟 개의 고개에 둘러싸여 집 지을 만한 곳이 3곳뿐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또 다른 이름은 창말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 피신할 일이 생기면 거처할 곳이 바로 사창리, 즉 창말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창은 倉, 창고라는 뜻이어서 지금도 사창리 버스 터미널 도로가에는 ‘옛 史呑鄕의 國倉 터’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러니 도마치 아래 사내면의 사창리라는 지명이 史와 倉에서 나왔음은 뻔한 일이다. 그나저나, ‘창말’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임금을 모시던 사람들이 임금이 피난해야 할 곳을 미리 정할 정도였다면, 그들은 정치가가 아니라 전략가였던 셈이다. 정치와 전략은 얼마나 다른가.

사창리 읍내는 군인들이 불경기 호경기를 좌우하는 곳, 어쩐 일인지 읍내 거리는 한산하다. 찬 바람을 피해 외출 나온 군인들은 모두 실내로 들어간 것인가. 그래도 괜찮다. 발길은 이내 사창리를 따라 춘천 쪽으로 뻗어 내린 곡운계곡을 향한다. 사실, 화천군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물의 나라’의 첫 번째 질료는 산이며, 두 번째 질료는 계곡이다. 솟는 물이 있지만 흐르는 물도 있는 법인데 화천의 물은 흐르는 물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곡운계곡은 길 옆을 흐르면서도 입체화가 잘 된 길이다. 물이 산과 자갈과 바위와 조화를 이룬 탓에 지나는 차들은 모두 서행, 늦가을볕이 연출한 계곡미를 감상하기에 바쁘다.
▲ 가을 정경을 담기 위해 나온 사진 애호가들이 도마치의 가평군 쪽 적목리 산기슭 아래에서 피사체를 찾고 있다. 가을에는 사진 찍는 이들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곡운계곡은 모두 아홉 개의 굽이를 지녀 곡운구곡(谷雲九曲)으로 부르는데 여기에도 ‘史倉’과 같은 의미망이 존재한다. 곡운은 1670년 평강 현감을 지낸 김수증의 호로, 김수증은 송시열이 유배를 당하자 관직을 던지고 지금의 사창리 즉, 사탄에 기거하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던 사람이다. 사창리가 곡운으로 불린 적도 있는 것은 김수증의 삶과 닿아 있어서이다.

곡운구곡을 오가는데 상념이 스쳐간다. 도마치를 경계로 한 가평은 이중환이 ‘사람 살기 적당치 못한 곳’이라 했다. 화천군 사창리는 관직을 버리고 은둔에 들어간 김수증의 삶과 임금의 도피 예정지로서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니 그 역시 사람 발걸음하기 힘든 곳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졌다. 지금, 도마치 이쪽과 저쪽은 가장 순도 높은 바람이 넘나드는 생명의 땅이다.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 화천 사내면에서 춘천시 쪽으로 뻗어 있는 곡운계곡. 관복을 벗고 은둔했던 김수증의 선비 정신을 벗할 수 있는 물길이다.


여행 포인트

- 경기도 가평읍-명지산 방향 북면-75번 국도-

조무락골 지나쳐 도마치-화천군 사내면 사창

리-춘천 화천 방향 56번 국도-곡운계곡

- 가평읍에서 도마치까지 중간중간 슈퍼 있으

며 도마치 정상에 휴게소 있음. 사창리 읍내

식당 및 편의 시설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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