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태

변호사
우리나라 형법은 강간죄를 저지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살인죄를 저지르면 5년 이상의 징역이다. 강간죄는 친고죄(親告罪)다. 강간죄를 저질렀어도 고소를 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강간죄는 아주 나쁜 죄이지만 피해사실이 공개될 경우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법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형법이 제정된 이래 우리가 따라 온 룰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룰이 바뀌었다. 특별법이 제정되어 각종 예외가 생겨났다. 주거침입을 하거나 흉기를 소지하거나, 미성년자를 강간하면 징역 5년 이상,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을 강간하면 징역 7년 이상, 장애인이나 13세 미만자를 강간하면 징역 10년 이상에 처하도록 되었다. 게다가 이런 모든 예외적인 강간죄는 다 비(非(덧말:비))친고죄로 되었다. 결국 고소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예외를 두다 보니 이제는 실무상 일반강간죄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웬만하면 어느 하나의 예외에는 걸리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는 강간죄의 형이 살인죄보다도 더 높게 책정되었다. 즉 13세 미만자를 강간하면 징역 10년 이상에 처해지나 그 13세 미만자를 살해했을 경우는 그냥 징역 5년 이상이다.

강간이 나쁘긴 하지만 과연 살인보다 더 나쁜가? 부녀자의 정조를 목숨처럼 여겼던 봉건사회라 해도 그렇진 않았다. 이건 모세의 십계명과 고조선의 8조금법부터 이어 내려 온 인류문명의 룰과 배치한다. 양(洋(덧말:양))의 동서와 시(時(덧말:시))의 고금을 막론하고 강간이 살인보다 나쁘다고, 그것도 두 배나 나쁘다고 한 적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리는 지난 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두순 사건(일명 ‘나영이 사건’)을 기억한다. 당시 법원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는데도 그 천인공노할 만행 때문에 온국민은 형이 너무 가볍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의 법에 의하더라도 더 중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사와 재판을 그렇게 하지 않아 놓고 국민여론이 들끓으면 법을 개정할 생각부터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법을 개정한다. 요새는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대법전을 가지고도 법 개정을 따라가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야 현행 법령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3세 미만자 간음죄는 2010년 4월까지는 친고죄였으나 그 이후부터는 비친고죄가 되었다. 몇 달 전까지는 고소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 이젠 고소가 없더라도 교도소에 가야 한다. 혼란스럽다.

법만 문제가 아니다. 재판도 그렇게 한다. 조두순사건 이후 전국 법원의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갑자기 높아졌다. 물론 비등한 국민여론, 국민의 법감정을 존중하겠다는 데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조두순 이전의 강간범보다 조두순 이후의 강간범이 두 배로 중하게 처벌받는다면 강간범들도 좀 억울할 것 같다. 그들은 조두순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

그냥 이제는 좀 원칙을 지켰으면 좋겠다. 예외가 원칙보다 훨씬 더 많으면 예외가 원칙이 된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법을 바꾸면 법전은 누더기가 되어 나중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괴물이 된다. 강간범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살인범은 그보다 더 나쁜데 법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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