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亨鎭 원주문화원장


고려 충렬왕때 원(元)나라의 반란군인 합단(哈丹)적이 기마병 조직의 대군을 이끌고 침범하였을 때 정규군마저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전세속에 조정마저 급히 강화도로 피신하게 되니 그야말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적은 우리 백성들의 곡식과 가축을 탈취하고 부녀자를 겁탈하여 가죽을 벗겨 승전의 증거와 보고로 대신하는 등 그 잔악무도한 만행은 천인이 공노하였다.

여세를 몰아 원주에 도착한 적은 엄동설한에 영원산성을 에워싸고 최후의 발악을 다하니 그 이유는 식량이 떨어져 생사기로에 있어 진퇴양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때 비분강개하여 홀연히 일개 선비의 몸으로 결연히 주민과 함께 사즉생(死卽生)으로 일치단결함으로 십전십승하는 장거를 이룩했으니 바로 그가 鄕貢進士 원충갑장군이다.

1291년(충렬왕 17년) 음력 1월 21일이니 어찌 이날을 잊으랴. 원주에서 대승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메아리치면서 사기충천하여 곳곳에서 적을 격퇴, 국운을 회복시킬수 있는 전기가 마련됨으로써 조정에서는 원주를 익흥도호부로 승격시키고 3년간 통상적인 부역과 공물(세금)을 면제하라 명했으니 그 공로 익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후 원충갑 장군은 삼사우윤을 거쳐 충숙왕때(1319) 상호군이 되고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고려의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묘는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에 안장되었고 조선조 현종 11년(1670) 충렬사를 세워 배향했고, 원주문화원에서는 1996년 대첩 705주년을 맞이하여 매년 민관군 합동으로 고증을 거친 제례의식을 엄숙하게 거행해왔다.

금년 역시 2월 13일(음력 1월 21일) 원주 치악산 영원산성 제710주년 대첩제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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