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우내 얼렸다가 녹였다가 황태와 사랑싸움 하는 듯 싶어요”

▲ 인제 용대리는 겨울이 가장 바쁜 농번기라고 말하는 최귀철씨가 덕장에서 명태를 내걸고 있다. 인제/안의호
60년대 초에 형 귀환 씨와 얼음장사하며 인제 정착

덕장사업 우연히 시작 다른일 보다 몇배 중노동

몇년전 아들이 가업 대물림 손자 원한다면 말릴 생각없어



“용대리 주민들은 일년 중 아홉 달은 황태를 만드는데 바치고 나머지 세 달은 농사를 짓느라 정말 쉴 틈이 없습니다.”

용대리 황태 원조 최귀철(73·용대리)씨는 인제 용대리는 겨울이 가장 바쁜 농번기라고 말한다. 보통 농촌의 경우 겨울이 되면 동네 어른들은 경로당에 모여 소소한 소일거리로 겨울을 나지만 용대리 경로당은 아무도 찾는 사람 없는 개점 휴업상태다.

최씨는 몇 년 전 아들(최종국·44)에게 가업을 물려줬지만 누구보다 바쁜 겨울을 보낸다. 황태를 만드는 일은 집에서 기르는 개도 손을 거들어야할 만큼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몸 쓰는 일은 인부들과 자식들이 하지만 소소한 것은 최 씨가 다 챙겨야 한다.

“황태가 식탁에 오르려면 50명의 손길을 거쳐야 해요. 하다못해 농사도 이젠 기계로 지을 수 있지만 황태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만들 수가 없어요”

북태평양어장에서 우리 원양어선이 잡아온 명태는 알을 채취하고 속을 발리는 할복작업에서 냉동과정까지 수많은 손길을 거쳐 용대리 덕장까지 온다. 덕장에서도 널고 거두고 상품으로 만들기까지 어느 하나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하다못해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발리고 황태채를 만드는 상품화 과정도 아직까지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용대리는 전국의 어느 농촌보다 젊은이들이 많다.

지금은 용대리가 원래의 마을 이름보다 황태마을로 전국에 더 알려졌지만 용대리의 황태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용대리의 황태역사는 50년 전 얼음을 얼려 팔던 동해안에 공급하던 최귀철씨 형제로부터 시작됐다.

최씨는 지난 1960년대 초 용대리의 추운 겨울날씨(당시의 겨울은 보통 영하 30도 이하였다고 최씨는 회고했다)에 착안, 매 바위 그늘 아래 얼음 창고에서 ‘56관 얼음덩이’를 만들어 영동지역에 공급하던 형 최귀환(82·춘천)를 따라 얼음상인으로 인제에 들어왔다. 이들 형제가 황태덕장을 운영하게 된 것은 얼음을 받던 거진지역 한 상인이 형 귀환씨에게 얼음을 얼려 파는 것보다 명태를 얼려 파는 것이 수지가 낫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지방태(동해안 근해에서 잡은 명태)가 많이 나던 시절이라 명태값이 헐했다. 원산에서 노랑태, 고성에서 북어를 만들어 많은 수익을 올리던 시절이라 얼리고 말려 팔면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덕장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고생이 심했다.

“커다란 고무 통에 민물을 담아 명태를 씻었는데 그때는 얼마나 추웠는지 하루 작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갈 때면 옷이 꽁꽁 얼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무거웠어요. 그때 손발을 얼려 지금도 찬바람을 쐬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쑤셔요.”

특별히 배운 기술도 없이 시작한 일이라 생태를 손질해 덕장에 내다 거는 것이 얼음 만드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든 중노동이었다. 그러다 원산에서 덕장을 운영하던 김상용(작고)씨를 만나 개울을 막아 그 물에 명태를 행구는 방법을 배우면서 일이 다소 수월해졌다.

최 씨는 “지금은 명태가 손질이 다된데다 꽁꽁 얼려 오기 때문에 그때에 비하면 많이 수월해졌다”고 회상한다.

용대리의 황태는 겨우내 추운 날씨가 지속돼 바짝 언 상태에서 마르는 동해안지역의 북어와는 달리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 속살이 스펀지처럼 부풀어 올라 품질면에서 동해안 북어를 압도, 황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갔다.

겨울철 일자리를 찾아 용대리로 왔던 사람들이 아예 눌러앉아 덕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용대리는 말 그대로 황태마을이 됐다. 최씨처럼 덕장을 운영하던 1세대가 물러나고 젊은 사람들이 덕장을 대물림하면서 용대리의 황태덕장은 점점 체계를 갖춰갔다. 젊은 세대는 명태를 말려 황태를 만들던 1세대에 이어 황태를 가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택배 등을 통해 전국으로 판매한다.

최 씨는 “명태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정말 귀한 생선”이라고 강조한다. 명태는 북어, 동태, 선태, 망태, 조태, 노가리, 황태 등 상태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명란, 창란, 채, 껍질, 머리, 뼈, 가루 등 활용부위에 따라 제품 이름도 다양한다.

용대리에는 가족 기업형태로 황태덕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최 씨의 경우도 아들과 딸, 사위가 함께 모여 진부령덕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손자들은 조금 편안한 직업을 갖길 바라지만 황태일을 하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는 만큼 황태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많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은 밥도 사서 먹는 시대잖아요. 우리 때는 못 배워서 말리는 것밖에 못했지만, 앞으로는 황태로 정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근해에서 명태가 나지 않고, 러시아와의 어업협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구온난화로 겨울추위가 많이 덜해져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최 씨가 보는 황태마을의 미래는 아직도 밝다.

인제/안의호 eunsol@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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