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자료 풍부… 아리랑 콘텐츠 발굴 최적지
후발주자 밀양·문경시 “정선 소리꾼 육성 강점 아리랑시책 벤치마킹”
‘대한민국 아리랑 축전’ 정선군 개최 추진
지역간 과다 경쟁 불가피

아리랑은 지난 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세계인의 노래, 세계인의 소리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국내 아리랑고장은 저마다의 콘텐츠 개발을 통해 아리랑시장의 선점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총성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랑의 시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객관적인 현주소와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본지 취재팀은 국내 아리랑고장을 찾아 이들 지역에서 바라보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인식과 아리랑 콘텐츠 발굴 현황 등을 살펴봤다.


 

▲ 강원도민일보와 전남일보, 경남신문이 우리나라 3대 아리랑 발생 지역의 광역(강원도ㆍ전남도ㆍ경남도) 및 기초자치단체 (정선군ㆍ진도군ㆍ밀양시)와 공동으로 마련한 ‘2013 국민 대통합 아리랑’ 공연이 지난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본사DB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아시나요. 정선아리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느림의 미학이죠. 구성진 가락에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서정적인 가사까지….”

경남 밀양에서 만난 예능인과 문화예술 담담공무원들이 들려주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정선아리랑을 듣고 있으면 우리 민족의 삶이 보이고 시대가 그려진다는 답변이었다.

여기다 이제야 아리랑 전승의 걸음마에 접어든 밀양에 비해 오랜 세월 아리랑의 기록보존과 소리꾼 육성에 힘을 기울여 온 정선군에 대한 부러움을 공통적으로 표현했다.

밀양백중놀이 중요인간문화재 하용부(68)씨는 “고장마다 아리랑의 소리가 전해지고 있지만 가장 한민족의 정서와 한을 표현하고 있는 소리는 역시 정선아리랑이다”고 말했다. 춤꾼인 그는 밀양아리랑을 전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몇 안 되는 소리꾼이기도 하다.

그는 “밀양아리랑은 너무나 잘 알려진 대중가요의 성격이 짙어 오히려 전문소리꾼 육성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이런 면에서 아리랑의 행정지원과 지속적인 소리꾼 발굴 및 전승, 지역주민 의식 등 3박자가 잘 갖춰진 정선이 사실상 아리랑의 종주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하씨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높은 기대감 못지않게 날카로운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정선아리랑 공연에 팔색조 한복을 입고 나와서 노래를 하고 살랑살랑 몸을 흔들어가며 부르더군요. 당황스러웠어요. 정선아리랑은 밭을 매다 부르고 고개를 넘으며 부르던 서민들의 소리인데 알록달록 예쁜 한복이 맞는 건가요.”

하씨의 지적은 전통성과 대중성을 사이에 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정선아리랑의 실태를 매섭게 꼬집은 것이다.

김금희 밀양아리랑보존회 부회장의 의견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최근 독립군의 이야기를 담은 밀양아리랑 공연을 기획해 큰 인기를 끌었다.

김 부회장은 “전통문화는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생성하고 다양하게 변형하려 하기 보단, 여러 각도와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정선아리랑은 많은 아리랑 원천자료와 소리꾼을 보유하고 있어 아리랑 콘텐츠 발굴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밀양시가 매주 토요일 밀양 아리랑 상설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영남루 누각을 찾았다. 밀양시민이 떠올리는 정선아리랑을 듣기위해서다. 그곳에서 만난 장종수(76·밀양시 상남 예림리)씨에게 정선아리랑은 가슴이 쓰린 노래, 한민족 ‘삶의 그 자체’였다.

정선아리랑의 가사를 다소 어설프게 읊으며 어깨춤을 들썩인 장씨는 “우리 민족의 처량했던 시절,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모습, 조국의 해방부터 번영에 이르기까지 정선아리랑에 모두 녹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정선아리랑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듣기는 좋지만 따라 부르기는 어려워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것.

손차숙 밀양시 문화예술담당은 “강원도무형문화재로 육성해 온 정선군의 아리랑시책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소리꾼의 전승기반이 탄탄하다는 점이 정선아리랑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밀양시는 오는 2015년말까지 지상 4층에 연면적 9250㎡ 규모의 아리랑파크를 건립할 예정이다.



문경아리랑

경북 문경은 유네스코 등재 전후로 아리랑 육성에 발 벗고 나선 대표적인 도시 중 한 곳이다. 최초로 서양식 악보로 채보된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의 아리랑에서 문경새재아리랑을 소개한 것을 근거로 국립아리랑 박물관 유치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문경시는 밀양시와 마찬가지로 소리꾼 육성과 전승은 미흡하다.

안태현 밀양시 학예연구사는 “정선아리랑은 30여년째 아리랑제를 열어 지역주민과 함께 아리랑의 매력을 한없이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타 시도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이라고 손꼽았다.

이어 “경창 대회를 통해 정선아리랑을 전승 및 보존해 나갈 인재를 육성하는 것도 정선이 지닌 큰 자산으로 볼 수 있다”며 “비록 대중성은 부족해도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의 고유 유전자는 정선아리랑과 가장 많이 닮아있다”고 전했다.

특히 안태현 학예연구사는 “정선과 밀양은 자연 지형적으로 유사한 영향으로 사실상 아리랑의 음률이나 고유가락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며 “상호 보완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시의 아리랑육성시책은 경북도 차원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북도는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무형문화재 지정을 거울삼아 문경아리랑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 학술적 자료 축적과 소리꾼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며 “이런 점을 경북도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3대 아리랑의 현 주소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이후 정선과 진도, 밀양 등 우리나라 3대 아리랑 발상지역은 아리랑 주도권 경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971년 도무형문화재 제1호로 정선아리랑을 지정하며 아리랑 전승 및 보존에 첨병 역할을 한 정선을 중심으로 진도와 밀양 등 후발 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올초 국립아리랑박물관 문경 유치를 앞세워 저돌적인 자세로 아리랑 경쟁 레이스에 뛰어든 문경은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도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다. 진도와 밀양 역시 도무형문화재 지정 추진을 검토 중에 있다.

아리랑 경쟁 구도 속에 각 지자체간 과다 경쟁이 불가피한 것은 단연 ‘콘텐츠 경쟁’이다. 강원도는 오는 10월 정선아리랑제 개최 시기에 맞춰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외국 동포와 국내를 아우르는 제1회 세계 대한민국 아리랑 축전 개최를 추진 중이다.

밀양은 밀양아리랑 전수관 및 문화재단 설립을 비롯해 밀양아리랑 창작극, 가사집 발간, 경창대회, 체조개발, 플래시몹 대회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문경은 아리랑을 서양 음계로 처음 채보한 미국 선교사 헐버트의 동상을 옛길박물관에 건립하는 것과 헐버트 가문과의 교류 등도 구상중이다.

진도는 민족문화예술특구 지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데 이어 진도아리랑 글로벌 프런티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진도는 전라남도 내 다양한 무형문화재와 연계해 전체적인 맥락에서 아이템 발굴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콘텐츠 과다 경쟁과 달리 아리랑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자료발굴과 보존, 채록, 소리꾼 육성은 정선을 제외한 타 도시의 경우 초보수준이다.

정선아리랑 전문소리꾼은 현재 예능보유자 4명, 전수조교 3명, 이수자 10명, 전수장학생 6명 이외에 군립아리랑예술단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은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민요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각 지역 아리랑의 특색을 인정하고 공생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아리랑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남우·박창현·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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