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딸, 어머니 만나던 찡한 날
추석 후 한가한 틈에 하루 만남
경남 창원 사흘간 ‘만날제’ 축제도

▲ 반보기는 추석을 지내고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시집간 딸과 어머니, 또는 일가친척이 만나는 반나절의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반보기는 시집간 딸이 아니라 남북이산가족 상봉일 것이다. 본사DB

반보기는 우리 민속 중에 애잔함으로 가슴 찡한 풍속이다. 추석을 지내고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시집간 딸과 어머니, 또는 일가친척이 만나는 반나절의 시간을 말한다.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보기라고 한다.

짐작하듯이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부득이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가 그날 안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애틋한 풍속이다. 농사일로 바쁘고 출가외인이라 바깥출입조차 어려웠던 시절에 그나마 숨 쉴 구멍이었다.

여성은 출가외인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친정을 방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정에서 딸이 보고 싶다고 사돈댁을 찾기도 어렵다. 예의라는 절차가 있고, 접대 등 사정이 있어 사돈 간의 내방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통사회에서 여성 중심의 상호 방문 혹은 왕래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배경에서 반보기의 의미는 희망이었다.

처음에는 모녀간의 상봉과 그리움 해소라는 회포 풀기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차츰 사돈 간의 교류로 이어졌고, ‘사돈이 연줄 걸리듯 한다.’는 말처럼 겹사돈 등 같은 지역 출신들이 많이 맺어지다보니 개인을 넘어 지역 간의 공동체 교류로 이어지기도 했다.
 

▲ ‘만날고개’에 전해오는 모녀간의 애틋한 상봉 전설을 테마로 한 경남 창원의 만날제 모습. 사진=창원시

반보기는 주로 인근지역 명승지나 고개 마루에서 이루어졌다. 경북 청도군의 팔경중 한 곳인 ‘유호연화’는 지역 여인들의 단골 반보기 장소였다. 한창 때는 마을 장정들이 파수를 설 만큼 성행했던 곳으로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또 경남 창원시는 ‘만날고개’에 전해오는 모녀간의 애틋한 상봉 즉, 반보기 전설을 테마로 ‘만날제’라는 축제를 마련하였다. 지난 1998년부터 매년 추석 다음날부터 강강술래, 민속놀이, 장기자랑 등을 펼치며 사흘간의 축제를 이어갔다.

반보기가 길어지면 근친(覲親)이라고 일컫는 ‘온보기’가 된다. 한가위 넉넉함이 친정 방문을 허락하며 휴가를 주는 것이다.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는 속담은 친정나들이의 기쁨을 대변한다.

이 시대의 반보기는 시집간 딸이 아니라 남북이산가족이다. 금강산은 얼싸안고 눈물을 뿌리며 중로상봉 하던 반보기의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올핸 다된 밥에 재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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