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성품 지닌 왕으로 재림
유배지 영월 곳곳 이야기 남겨져
풍요·안녕 보살피는 수호신 미화

▲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698년(숙종24) 태백산에 세워진 ‘ 단종비각’ 모습.

단종은 유배의 고통을 노정 곳곳에 남겨 놓고 영월에 도착했다. 그리곤 불과 4개월 만에 운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죽음은 명확하지 않다. 실록에는 ‘자살’이고, 개인문집에는 ‘타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단종은 자신 때문에 여러 명이 죽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려 깊은 인물로 그려진다. 또 노복에게는 개를 죽이기 위해 줄을 당기라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 자신의 목에 줄을 맨다.

이처럼 단종을 자상하고 고귀한 성품을 가진 왕으로 미화하고 있다.

영월에는 ‘살아서 추익한, 죽어서 엄흥도’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추익한(秋益漢)은 자는 우삼, 호는 우천이다. 1411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 부윤을 지냈다.

벼슬에서 물러나 평창 등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단종이 유배되자 산과(山果) 등을 따서 진상하면서 어린 왕을 위로하곤 하였다.

하루는 머루와 다래를 따서 단종을 만나러 가던 중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단신으로 동쪽 골로 행차하는 것을 보았다.

“이 어인 행차이시옵니까?”하니 단종은 “나는 지금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여기 머루와 다래를 드시고 가시옵소서”하였더니 “경의 충성이 가상하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익한은 급히 영월로 뛰어갔으나 이미 단종은 승하한 뒤였다. 추익한은 단종을 만났던 수라리재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영월에서 추충신으로 불린다.

단종이 태백산으로 향하는 노정은 유배 길과 사뭇 다르다. 올 때는 노산군이었지만 태백산으로 향하는 단종은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탄 늠름한 왕의 모습이다.

또한 그 길가에 있는 마을 곳곳, 또는 쉬어갈 만한 곳에는 단종의 이야기가 뿌리 깊다.

길목 마을에서는 단종을 서낭신으로 모시고 서낭당 주변은 엄나무가 지킨다. 엄흥도가 죽어서 엄나무가 되어 단종이 계신 서낭당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단종은 태백산신으로 좌정하면서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을 마친다.

이처럼 민간이 작성한 단종의 생애는 역사에 비해 슬프지만은 않다. 대왕으로 부활하고, 풍요와 안녕을 보살피는 수호신으로 지역민 곁에 남아 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