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돌보고 노래 부르고 … 30년째 ‘즐거운 이중생활’
2000년 춘천에 병원 개원 4년후 캐나다 음악 유학
4년째 클래식 공연 해설 내년 성악가로 변신

▲ 클래식 해설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홍광진(53) 춘천 연세이튼치과 원장이 학창시절 성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진우

누구에게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다.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은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 잡으며 우리의 발목을 잡는가 하면, 일상의 도피처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본인이 가야할 길과 가고 싶은 길 사이에서 대차게 그 ‘사잇길’을 택한 홍광진(53·사진) 춘천 연세이튼치과 원장. 치과의사와 성악가·클래식 해설자로 30여 년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를 15일 그의 병원에서 만났다.

치과대학에 진학하려면 공부하기도 벅찼을 텐데 그는 언제 클래식과 만났을까. 홍광진 원장은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합창단 지휘와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으며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는 홍 원장.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치대 합창단을 지휘하며 음악과 인연을 이어가던 중 1984년 본과 1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제주도 고향집에 내려가면서 성악에 대한 열망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성악과에서 박인수 테너 제자로 공부하던 교회 선배에게서 성악 발성법을 배우게 된 것. 다른 사람의 분야라고만 생각했던 성악을 한 달간 공부하면서 홍 원장의 성악 사랑이 시작됐다.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서울대와 연세대를 오가며 성악을 공부하고, 이화여대·연세대 연합 노래 선교단까지 접수했다. 홍 원장은 “그 당시 홍광진을 찾으려면 치과대학이 아니라 음대에 가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성악가와 치과의사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원래 공부한 치과의사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한림대 의과대학 조교수로 활동하던 홍 원장은 2000년 9월 인생의 두번째 갈림길에 서게됐다. 한림대 의과대학 조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의로 나서게 된 것. 3년 후 병원이 자리를 잡자 홍 원장은 2004년 캐나다로 돌연 음악 유학을 떠났다. ‘더 늦기전에 하고 싶은 일에 모든 것을 걸어보자’라는 마음으로 계획했던 유학이었지만 시작부터 어려움에 부딪쳐야 했다. 우선 ‘1년 단기 학생 신분’인 그를 받아 줄 곳이 없었다. 돌파구를 찾던 중 우연히 개신교 종파 중 하나인 메노나이트 대학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홍 원장은 관계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홈스테이를 하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회의를 거쳐 “영어시험에서 기준점수 이상을 받으면 합격시켜주겠다”는 관계자의 말에 홍 원장은 영어시험 공부에 매진했다. 결과는 합격.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부터 ‘아들 뻘’ 학생들과 1년간 원하던 음악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홍 원장에게 자신의 한계를 깨우치게 한 시간이었다. 그는 “성악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고 어려서 부터 공부하던 친구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도 원하는 것을 배웠기에 유학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홍 원장은 성악과 치과의사 사이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대신 4년째 매년 여름 ‘한여름밤의 아리아’에 참여해 춘천 시민들에게 성악의 매력을 알려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 공연에 홍 원장의 풍부한 해설을 곁들이는 이 공연은 해마다 1200여 명의 구름관중이 몰려 춘천의 대표 여름축제로 자리 잡았다. 공연에 참가하는 이헌·목진학·오성룡 테너, 전지영·심민정 소프라노, 정규환·정효식 바리톤, 심기복 베이스 등은 홍 원장이 이화여대·연세대 연합 노래 선교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클래식의 매력을 묻자 홍 원장은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같은 곡이라도 누가 연주하느냐, 누가 노래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몇백년의 시간을 관통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만큼 수많은 이야깃 거리를 자랑하는 것도 장점이란다. 홍 원장은 “먹어도 물리지 않는 된장찌개처럼 들으면 들을수록 매번 새로운 것이 클래식”이라고 말했다.

홍 원장은 앞으로도 ‘한여름 밤의 아리아’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성악가 홍광진으로 변신해 내년쯤 대중 앞에 설 준비도 하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니 해설만 하지 말고 한 번쯤 무대에 서보라고 주변에서 권유해 계획 중”이라는 홍 원장. 성악가 홍광진의 풍성한 발성이 춘천을 울릴 날을 기대한다. 오세현 tpgu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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